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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1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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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7-21 조회수1,398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3년 7월 21일 (월) -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2,38-42

<심판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얼어날 것이다.>

 

38) 그 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하자 3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40)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41) 심판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42) 심판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메시아와 기적은 별개의 것

 

지난주 금, 토요일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마태오가 예수님께서 구약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였다. 마태오뿐 아니라 다른 복음사가들도 예수님의 <메시아-신학>을 단번에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복음을 이용하여 점층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세 가지 측면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① 첫째는 예수님 스스로의 메시아에 대한 자의식(自意識)이다. 하느님 편에서 볼 때 말씀이신 성자는 육화(肉化) 사건으로 말미암아 즉시 이 세상의 메시아로 계시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메시아성은 인간 예수의 자의식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장, 성숙한다. 즉 "되어 가는 것"이다.

 

② 둘째는 복음사가들의 편집사적 노력이다. 예수님을 더 이상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신약성서 시대에 예수의 목격자인 사도들과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 복음서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따라서 복음사가들은 저마다 고유의 편집의도를 가지고 <메시아-신학>을 전개한다. 전체적인 구상은 대략 <나자렛 출신 예수 -> 선생, 랍비 -> 위대한 선생 -> 예언자 -> 대예언자 -> 메시아 -> 그리스도> 라는 도식에 부합한다. 마르코복음은 그 첫머리에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1,1)이라는 말로 복음서의 주체를 "그리스도"로 두고 있지만 결국 위의 도식으로 풀어간다. 요한복음도 그 서문(1,1-18, Prologue)에서 하느님 말씀의 선재(先在)와 전실존적(前實存的) 그리스도론을 테마로 삼아 복음서를 시작하지만 전체 내용을 통하여 줄곧 <메시아-신학>을 피력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③ 셋째는 예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이는 예수님이 진정 메시아인지에 대한 인간의 수용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스스로 내심 가득 찬 메시아적 자의식으로 군중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메시아적인 업적을 보이고, 또 복음사가들이 위에서 말한 편집의도를 가지고 청자(聽者)와 독자(讀者)들을 유인한다 하더라도 마지막 결정은 인간이 내린다. 이 결정에는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들 고유의 메시아 관(觀), 또는 메시아 상(象)도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복음서는 예수께 대한 인간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태도는 통상 수용(accept)과 거부(reject), 나아가 신앙(belief)과 불신(unbelief)으로 드러난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한다면 오늘 복음은 쉽게 이해된다. 오늘 복음에 보듯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자신을 메시아로 증명할 수 있는 기적"을 요구하고 있다.(38절)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수용(受容)하고 신앙(信仰)하기 이전에 그에 합당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4복음서는 자주 이러한 군중의 태도를 보도하고 있다: 마태 12,38; 16,1; 마르 8,11; 루가 11,16; 요한 2,18; 6,30)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구약성서에 보도된 요나의 기적(요나 3장)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39절) 물론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포함한 군중은 예수님으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기적들을 배부르게 보아왔다.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메시아 상에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상이란 정치적, 현실적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메시아와 기적을 철저하게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군중은 결국 <선(先)기적 후(後)믿음>의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先)믿음 후(後)기적>의 노선을 고집하신다. 이는 예수께서 행하시는 거의 모든 치유기적이 인간의 믿음 또는 어떤 무엇을 항상 전제로 하신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기적은 믿음의 도구가 아니다. 기적이 있어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을 믿음의 도구로 삼는 것이며, 이때 믿음은 기적의 결과가 된다. 예수께서는 기적과 믿음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보신다. 그러나 믿음이 기적을 가져올 수는 있다. 이 때 기적은 믿음의 실재(實在)이다.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겠다는 태도는 결국 참된 메시아는 보지 못하고 기적만 보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주님이요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우리의 순수한 믿음을 바라신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이 믿음이 가져오는 엄청난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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