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16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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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7-23 | 조회수1,502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 2003년 7월 23일 (수)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3,1-9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더니 2)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그대로 모두 호숫가에 서 있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었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6) 해가 뜨자 타 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9)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복음의 씨와 마음의 밭
우리가 알다시피 마태오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략 5개의 설교집성문으로 엮었다. 그것은 ① 산상설교(5-7장), ② 파견설교(10장), ③ 비유설교(13장), ④ 공동체설교(18장), ⑤ 심판설교(24-25장)이다. 오늘 복음은 세 번째 설교집성문인 비유설교에 해당된다. 비유설교는 예수께서 총 7개의 비유를 통하여 가르침을 내리시는 것인데, ①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② 가라지의 비유, ③ 겨자씨의 비유, ④ 누룩의 비유, ⑤ 보물의 비유, ⑥ 진주의 비유, ⑦ 그물의 비유가 그것이다. 비유를 통한 가르침의 대상을 본다면 전반부 4개는 제자들을 포함한 군중을 향한 것이며, 후반부 3개는 오직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다.
비유설교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비유설교에 등장하는 7가지 비유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하느님 나라의 어느 한 측면을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주고 있는 바, 하느님 나라의 특성과 성격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말씀들이다. 비유설교의 부차적인 목적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지상 선포자(宣布者)요 구현자(具現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느님 나라의 신비(神秘)에 관한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 그대로 신비이다. 신비(神秘, mysterium)란 인간의 이성적 이론(理論)과 인식(認識)을 초월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영묘한 비밀을 일컫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밝혀주려 하신다. 그런데 신비가 인간의 머리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역이니 인간의 어떤 말도 지식도 하느님 나라를 깨우칠 수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려 하시는 것이다.
비유(比喩, parable) 또한 인간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밝히려는 비유는 단순한 사람에게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소위 가방 끈 긴 사람)에게나 똑같이 어렵다. 똑같이 어렵다는 말은 똑같이 쉬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보자. 물론 씨를 잘 갈아엎은 밭에 뿌리지 않고 아무 데나 뿌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을 감안한다면 오늘 비유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씨가 뿌려진 장소와 그 결과를 비교한다면 비유자체는 쉽게 이해된다. 즉, "길바닥 -> 새의 밥, 돌밭 -> 말라죽음, 가시덤불 -> 숨막혀 죽음, 좋은 땅 ->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란 표현되는 이야기를 통하여 보조관념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앞으로 나타나지만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원관념은 비유 뒤에 숨겨져 있다. 따라서 원관념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비유는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지혜는 다른 어떤 지식이나 슬기로움이라기보다는 바로 "알아들을 귀"(9절)를 말한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관한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귀 기울여 듣고 머리로 깨달아 마음에 심는다면 복음은 필히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밭은 어떤 밭인가?◆[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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