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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사도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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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7-25 조회수1,916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3년 7월 25일 (금)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오늘의 복음]  마태 20,20-28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20) 그 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22)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24)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자리

 

오늘은 12사도 중의 하나이며 성 요한 사도의 형인 야고보 사도 축일이다. 그는 베싸이다 태생으로 어부였던 아버지 제베대오와 어머니 살로메의 아들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제자로 삼으신 직후, 아버지 제베대오와 더불어 그물을 손질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마태 4,18-22) 야고보는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됨으로써 12사도 중 첫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성인의 시신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안장되었고, 오늘날 여기에 대성전이 서 있다.

 

복음서전체에서 야고보 사도는 애제자(愛弟子)로 통하는 자기 동생 요한과 수제자(首弟子)인 베드로와 함께 셋이서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께서 이 세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을 보면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생각이 각별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럽게 변한 모습을 이들에게만 보여주셨다.(마태 17,1-8; 마르 9,2-8; 루가 9,28-36)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예수께서는 이 세 사람과 그의 부모만 따로 데리고 방에 들어가 아이를 소생시키는 기적을 목격하게 하셨다.(마르 5,21-43; 마태 9,18-26; 루가 8,40-56)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신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려가시어 게쎄마니 동산에서 고통과 번민에 싸여 기도하며 보내신 마지막 시간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마르 14,32-42; 마태 26,36-46; 루가 22,39-46)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란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3,17) 그 이유는 루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 마지막날이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길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에 묵어가기 위하여 선발대를 보냈으나 거절당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물었다.(9,51-54) 물론 두 사람은 예수님께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9,55) 꾸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늘 복음에도 거듭된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가 마르코의 원전(마르 10,35-45)을 그대로 베낀 것인데, 딱 한 군데만 고쳤다. 마르코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께 와서 도래(到來)할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각각 주시기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오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와서는 어머니가 예수께 청을 드리는 것으로 고쳤다. 마르코와 마태오의 예수님 수난사를 종합하면 이 어머니의 이름은 살로메이다.(마르 15,40; 마태 27,56) 그런데 왜 마태오는 느닷없이 죄 없는 어머니를 이 장면에 끌어넣었는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야고보와 요한의 체면을 생각하였고, 사도단 가운데서 그들이 차지하는 명예를 지켜주려 한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타 섞인 말씀은 어머니를 건너 뛰어 두 제자에게 향한다.(22-23절) 다른 열 제자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화를 낸다.(24절) 나머지 열 제자들이 화를 낸 저의(底意)는 또 무엇일까?

 

문제의 발단은 사실상 앞서 간 복음에 있다. 우선 "부자청년과 낙타와 바늘귀"(마태 19,16-26)의 대목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께 자기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받게 될 것인지를 묻는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하고 분명히 말씀하셨다.(19,27-28)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백 배의 상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했으니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들떠 있었고 뿌듯했겠는가 말이다. 열 두 제자들은 제각기 속으로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자리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되면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20,17-19)도 그들에겐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모두를 불러놓고 참된 제자상을 가르치신다. 참된 제자란 봉사하는 자이며, 종 중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예수님 스스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러 오셨기 때문이다. 옥좌의 자리는 이 땅의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야고보 사도처럼 순교로 목숨을 내어놓은 후에 받게되는 자리이다. 참된 제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저 종으로서 봉사해야 하는 일 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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