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치명적인 오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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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3-08-06 | 조회수1,572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말씀(민수 20,1-13: 마태 16,13-23)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우연인지 모두 주님의 최대의 분노를 목격한다. 그것도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 모세와 신약의 하느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 베드로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책을 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평생의 숙원이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베드로는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최고의 욕설, "사탄"이라 꾸중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혹독한 주님의 질책을 받고 있는가?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갈증과 굶주림)을 대변해 아뢰었고, 주님의 해결책(바위를 쳐서 물을 터져나오게 하여 백성과 가축을 먹이라는)을 백성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평소 시달려온 분풀이를 마음껏 하면서 분부를 거행했다.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는 일이다. 40년간(충분하고도 충분한 기간이다) 얼마나 고달펐던 그였던가? 그런데 그만한 일로 그렇게까지 가혹한 벌을 받아야 했을까?
베드로도 자신의 인간적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다 혼이 났다. 예수께서 수난당하고 죽으러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가만 있을 제자가 어디있겠는가? 다 예수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사탄"이라고까지 하시는 것은 너무하시는 것이 아닌가?
두개의 이야기 모두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는 주님의 과도한 분노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두 개의 에피소드를 잘 들여다보면, 주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이 선택하신 지도자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인가를 확연히 보여주시는 부분이다.
주님은 광야생활에서 당신에게 불평을 하고 화를 내는 모세에게는 결코 분노을 나타내신 적이 없으셨다. 그분은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보살피느라 늘 힘들고 어려운 짐을 진 모세의 원망과 투정을 한번도 외면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함량 미달인 백성들을 없애버릴까보다’고 은근히 모세의 편을 들어주시는 일까지 빈번하셨다. 그러면 모세는 그제야 제 정신이 들어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백성을 위한 간구와 변호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면 주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분노를 거두셨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모세에게 원하던 중개자로서의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주님께가 아닌 백성에게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것은 백성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치명적인 오류인 것이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는 말이었으나, 실은 백성들을 위한 주님의 일(그것이 비록 수난과 죽음일지라도)에 딴지를 거는 일을 자처하고 나섰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종이요. 교회의 수장이(오늘 대목에서 주신 사명) 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명백히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정체성을 잃고 사적인 인간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직권 남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더이상 사사로운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그런 분이다. 그분이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당신에게 쏟는 원망과 투정과 분노는 상관없이, 당신의 백성을 사랑으로 인도하는가, 바르게 이끄는가? 그것만이 그분의 가장 큰 관심사일 뿐이다. 백성의 지도자,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겁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은 알려준다.
어떤 신부님 한분이 자신이 평생 책정해놓은 목표와 신념을 신자들의 비협조로 꺾게 되었다고 매 미사 때마다 분노를 드러내셨다. 당신이 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주님이 그런 일을 허락하시는가보다고 겸손되게 받아들이겠다고 하시면서도 속이 무척 상하시는지 몇 달 동안 미사 때마다 화를 내시는 바람에 신자들은 미사가 마치 야단 맞으러 가는 시간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점점 빈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생을 바치기에 충분히 합당한 신념, 거룩한 이상에 틀림없는 목표라 할 지라도 이 정도가 되면 평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에 대한 ’집착’에 불과할 것이다. 무엇이 중요할까? 지도자, 목자는 주님의 영광을 가리며 인간적인 업적을 드러내고 오히려 맡겨진 백성들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드러내는 치명적인 오류는 저지르지 않는지 묵상해 봤으면 좋겠다.
가끔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교회 지도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들! 평생 애를 쓰고 이룩해놓은 숙원 사업에 집착하다가, 또는 사사로운 일들에 연류되어 저지르는 그런 일들이 신자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임을 깊이 숙고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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