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 제21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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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8-24 | 조회수1,654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 2003년 8월 24일 (일) - 연중 제21주일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없음)
[오늘의 복음] 요한 6,60-69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그 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아채시고 "내 말이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며 자기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예수께서는 또 이어서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66) 이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시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69)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매순간의 결단
오늘 연중 제21주일의 복음은 지난 연중 제17주일부터 우리가 매주일 들어왔던 요한복음 6장의 마지막 부분이다.(6,60-69; 70-71절 제외) 오늘 복음의 말씀은 그 동안 예수께서 피력하신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에 관한 신학의 결론이 되기도 하겠지만, 청자(聽者)로부터는 추종과 거부의 결단을 요구하는 복음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빵의 기적을 시발점으로 하여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하셨고, 당신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예수와 함께 하느님의 생명 안에 상호 내주(內住)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요한복음 6장이 제시하는 성체성사 신학의 핵심이다.
오늘 복음은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복음은 동시에 마지막 가르침을 통하여 청중들에게 추종과 거부의 결단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웅성거렸고(41절), 따졌고(52절), 수군거리면서(60절) 알아듣기 힘들다는 불만을 표시하였다.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분을 통하여 전자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후자는 생명을 준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왔다. 더 이상의 설득도 회유도, 기다림도 유보도 없다. 예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언어범주 안에서 충분히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남은 것은 인간 측의 결단이다.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제자들 중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렵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가르침에 대한 거부는 불신(不信)으로 나타나며, 불신의 결과는 추종의 거부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떠나가는 것이다. 예수를 떠나감은 더 이상 예수와 함께 할 필요가 없다는 결단의 행동이다. 이제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12제자가 구별되고, 12제자 가운데서도 충성과 배신이 구별된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67절) 예수님의 요구는 이미 12제자로 뽑힌 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해당된다. 다행히 12제자를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68-69절) 하고 추종을 결단한다. 참으로 옳은 고백이고 옳은 결단이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부 다 깨달았기에 이런 대답을 한 것은 아니다.
예수추종을 위한 결단은 옳은 고백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행위로 드러나야 한다. 즉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63절)는 말씀에 머물러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추종의 결단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매순간 일어나야 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매순간 영을 좇아 결단하지 않으면 가리옷 사람 유다처럼 물질을 위해 스승을 배반하게 된다.(요한 13,30; 18,5)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오늘 훌륭한 고백과 예수추종을 결단하였다 하더라도 육(肉)의 시련을 영(靈)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순간에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스승을 배반하게 되는 것이다.(요한 18,15-27)◆[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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