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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빈첸시오 드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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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27 조회수1,415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27일 (토) -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1581-1660)

 

  빈첸시오(Vincent de Paul)는 1581년 4월 24일 프랑스 남부의 가스코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살에 농촌을 떠나 닥스에서 기초수학을 받은 후 툴루즈로 가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1600년 9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빈첸시오 신부는 맡을 본당을 얻기 위해 이곳 저곳을 3년간 전전하던 중에 터키 해적들에게 붙잡혀 튀니지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1608년 파리로 진출한 그는 1610년 하인리히 4세의 첫 아내였던 마가렛트 드 발로아의 개인영성지도를 하면서 그의 일생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 베뤼유 신부를 만나게 된다. 1612년 파리의 조그만 본당을 맡아 일했고, 1624년 파리의 어린이예수 대학의 학장이 되면서 공디가의 영성을 지도하였다. 빈첸시오는 당시 많은 백성들의 사회적 소외와 종교적 무지함, 특히 사제들의 부족한 교육을 안타깝게 여겼다. 1625년 공디 가문이 전교단을 창립할 때 중심인물이 되어 이를 "빈센트 회"라고 불렀다. 1633년부터 이 전교단은 생 라자르의 작은 수도원을 본부로 사용한데서 "라자리스트 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1625년에 성인은 평생의 동반자가 될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도움으로 "사랑의 딸 회"를 창설하여 성직자들의 영성수련과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에 힘썼다. 성인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오직 필요한 것만을 추구하면서 겸손과 성실의 길을 걸었다. 성인은 1660년 9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그를 성인반열에 올렸고, 모든 자선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1833년 복자 앙투앙 오자낭이 설립한 평신도 자선 협의회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를 통하여 성인의 명성은 더욱 빛나게 된다.

 

[오늘의 복음]  루가 9,43-45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 감히 물어 볼 생각도 못 하였다.>

 

  43)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44) "너희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말씀의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또 감히 물어 볼 생각도 못 하였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두 번째 수난예고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자주 기도와 단식을 하였다. 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이 먹고 마시며 다니는 것을 보고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비난과 질책을 일삼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에 비유하시면서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때가 오면 모두가 단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루가 5,33-35)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하늘의 능력을 통하여 메시아로서의 자신을 계시하셨다. 예수께서 계시는 동안 잔치의 여흥은 계속된다. 그런데 그분께서 이제는 자주 그 여흥을 깨고 계신다. 잔치의 분위기가 점점 그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위에 첫 번째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종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신 후,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를 고쳐주셨다.(루가 9,23-42) 예수께서 하신 일에 탄복하며, 이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기리는 주위의 사람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두 번째로 예수님의 수난이 예고된다: "너희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44절) 그러나 수난예고의 시점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45절) 제자들은 분명 수난예고의 말씀을 들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루가는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제자들의 처지를 나무라기보다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는 신비"(45절)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수난의 신비가 하늘나라의 신비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하시는 수난예고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 뜻을 이해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45절)는 말은 괜히 물었다가 똑같은 말씀을 다시 듣게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사전에 실패라는 말은 없다" 라고 한 나폴레옹(1769-1821)의 말처럼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 앞에 수난이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울다가 웃을 수는 있어도 웃다가 울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다. 결국 제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대부분 사람들과 같은 메시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반복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메시아상을 수정하지 않고 고수하려 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이고 물질적이며 개인적인 야망까지도 포함한 그런 메시아상을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스승을 잘 따를 수 없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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