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26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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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0-03 | 조회수1,13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2003년 10월 3일 (금) -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 개천절(開天節)과 대종교(大倧敎)
개천절은 우리나라의 민족기원과 개국신화에 근거하여 시조(始祖)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이는 1909년 나철(羅喆)에 의해 중광(重光: 다시 일으켜 세움)된 대종교가 음력 10월 3일에 거행하던 제천행사를 정부가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제정한 국경일이다. "개천"의 본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다른 문헌에서는 "백두산"이라고 함)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날을 기념하는 거족적인 제천의식은 먼 옛날부터 전래되었으니,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한과 변한의 계음(契飮), 고구려의 동맹(東盟), 백제의 교천(郊天),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등의 제천행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대종교(大倧敎)는 단군(檀君)숭배를 기초로 하는 우리나라 민족종교이다. 근본 교리는 성(性), 명(命), 정(精)의 삼진귀일(三眞歸一)과 지(止), 조(調), 금(禁)의 3법이다. 대종교는 종교로 출발하였지만 그 시기가 바로 일제(日帝)의 조선 강점기(强占期)였으므로, 종교로서보다는 항일독립운동에 더 많은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교조(敎祖) 나철(羅喆; 1863-1916)은 구국운동이 몇 사람의 애국정객만으로는 이룩될 수 없고,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민족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다고 보고, 1909년 동지 오기호(吳基鎬) 등 10명과 함께 서울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함으로써,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 이후 700년간 단절되었던 국조(國祖) 단군을 숭앙하는 단군교를 창시하였다. 시교(始敎)한 지 1년 만인 1910년, 교도수는 2만여 명으로 늘었고, 교명을 "대종교"로 개칭하는 한편, 같은 해 만주 북간도(北間島)에 지사(支司)를 설치하여 1914년부터 본사(本司)로 삼았다. 제2대 교주 김헌(金獻)은 대종교의 종리(倧理)라 할 수 있는 "신단실기(神檀實記)"와 "신단민사(神檀民史)"를 저술하고, 3·1운동 이후 만주로 들어가는 동포들을 포섭하여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서게 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날로 심해져 제3대 교주 윤세복(尹世復)이 취임한 이후 많은 교인이 체포, 학살되었으나 지하로 숨어들어 1937년 시교당의 수를 52개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포교활동은 곧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으므로 교세 확장은 바로 독립운동의 확대이기도 하였다. 대종교의 중광(重光)은 한국학과 민족사관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단재 신채호와 백암 박은식이 이를 견인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대종교를 추종하였고, 오늘날 50만명 정도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참조]
[오늘의 복음] 루가 10,13-16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13)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게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앉아서 재를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15)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6) 이렇게 꾸짖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거부와 저주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루살렘 상경을 결정하신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냉대와 거부로 인하여 사마리아 지방을 우회하여 다른 길, 즉 데카폴리스와 베레아 지방을 택하시게 된다.(9,51-56) 이 지역은 일찍이 세례자 요한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우회로를 택하신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난 뒤 당신을 따르도록 허락해 달라는 사람과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난 뒤 예수를 따르겠다는 사람을 두고 제자들에게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62절)고 말씀하셨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지 말라는 말씀은 복음선포에 있어서 제자들이 지녀야 할 "철저한 공사(公私)의 구별"과 "불굴의 정신"을 요구하는 것일 게다.
이어 루가는 자신만의 특수사료인 "일흔 두 제자의 파견"(10,1-12)을 보도한다. 루가는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에서와 같이 "열두 제자의 파견"을 이미 보도한바 있다.(루가 9,1-6; 마태 10,5-15; 마르 6,7-13) 이것으로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을 사실상 마무리짓는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수일행에 대한 거부와 냉대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데카폴리스와 베레아 지방을 두루 거쳐 예루살렘으로 상경해야 하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또 한번의 제자파견은 지극히 필요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루가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10,2)는 예수님의 말씀을 삽입하여 "일흔 두 제자"라는 대규모의 파견을 성사(成事)시키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복음선포활동은 말씀과 기적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보이는 한편, 말씀과 기적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실패의 원인은 선교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교지역의 사람들에게 있다. 예수께서는 선교실패의 지역으로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을 실명(實名)으로 거명(擧名)하신다. 이 지역들은 모두 갈릴래아 호수 북방 인근어촌들로서 예수께서 가장 빈번히 활동하셨던 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복음말씀을 듣고도, 기적을 보고도 이를 받아들여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냉정하고 확실한 법칙(法則)을 따른다. 이들 도시들이 심판날에 이미 구약에서도 멸망의 도시로 예언된 띠로와 시돈(이사 23장; 에제 26-28장; 즈가 9,2-4)보다 훨씬 더 무거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어지는 구원의 은총을 거부한 만큼의 정당한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어지는 구원의 은총을 거부한 만큼의 정당한 심판이 주어진다는 법칙은 앞으로도 모든 선교지역에 적용될 법칙이다. 비록 예수께서 직접 그곳에 가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자들과 그들의 선교사를 거부하는 곳은 모두 같은 법칙의 적용을 받게 된다. 제자들의 말을 듣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을 듣는 것이고, 제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며, 나아가 예수를 파견한 하느님 아버지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6절) 물론 주어지는 은총의 기회를 잘 수용한다면, 수용한 그만큼의 보상도 정당하게 주어질 것이다. 각자 자신을 살펴보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좋고 많은 것을 주셨는가? 이에 감사하고 기쁘게 산다면 이것이 곧 지상의 행복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그 속에 불행이 담겨있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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