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 제28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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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0-12 | 조회수1,576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 2003년 10월 12일 (일) - 연중 제28주일
[오늘의 복음] 마르 10,17-27.<28-30> <가진 것을 다 팔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그때에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19)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22)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머물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지난 연중 제27주일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혼인에 관한 논쟁을 벌이신 예수께서는 "이혼(離婚)"은 없고 오직 "혼인(婚姻)"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시고 난 뒤 바로 사람들이 데려온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불러 껴안으시고 축복해 주셨다.(마르 10,1-16) 예수께서 일을 마치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시려 할 때,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 하면서 필자가 지난 복음의 내용을 서두에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이 맺어주신 신성한 혼인과 이로 인해 형성된 가정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어떠한 이유나 장치에 의해서 해체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부부의 사랑이 낳은 어린아이들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지상 최대의 임무가 바로 부모와 아이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데려가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은 엄밀한 의미에서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예수께서 먼저 -유다인들이 인정하든 않든- 수난과 부활로 닫혀진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자신이 열려진 문을 통하여 하늘나라로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어떻게 하늘의 문을 통과하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가 오늘 느닷없이 달려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영생(永生)의 방법을 청하는 사람의 머리를 가득 채웠던 것이다.
오늘 길가는 예수를 붙들고 영생의 길을 청하는 사람은 재산이 많은 부자였고, 그에게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릴 적부터 십계명의 모든 것을 잘 지켜왔다고 하니 틀림없이 율법을 잘 아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걱정 없이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왜 사생결단의 자세로 예수께 영생의 길을 묻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러나 부자의 기대 밖이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너라."(21절)
예수님의 말씀에 부자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이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정녕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길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를 따르는 길밖에 없는 것인가?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기만, 또는 가족의 영생을 얻겠다고 집안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성당이나 교회 일에 정신없는 자매나 형제신자가 있다고 치자. 꼭 이래야만 주님을 잘 따르는 것인가? 한 가정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자. 오늘날 예수님이 어디 계시기에 베드로와 11제자들처럼 그분을 따라나서겠는가? 그렇다고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오늘날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신흥종교들이 종용하는 것처럼- 나설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계시며, 그분의 가르침 안에 계신다.
예수께서 당시 부자나 12제자들에게 요구한 추종의 모양을 똑같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길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길은 많지만 그 뜻 같다는 것이다. 재물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추종과 영생의 길에 그만큼 방해가 된다는 것이며, 행한 만큼의 보상은 분명히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명을 지키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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