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허감의 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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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03-10-26 | 조회수1,31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마르꼬 10, 51)
10월 25일 토요일인, 어제의 일로 후회와 상실감으로 허탈한 심정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큰 행사를 마치고, 위로 차 가을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계획이 되어 있었는데 늦게 출발하면 길이 막히니까 새벽 5시30분까지 모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새벽미사를 못 가는데 어떻게 하지? 망설임도 잠시뿐, 대신에 ’평일 미사를 두 번 참석하면 될 거야’ 라고 쉽게 자신과 타협해버렸습니다.
이효석씨의 "메밀꽃 필 무렵" 으로 유명한 봉평을 거쳐 오대산의 전나무 숲, 소금강을 경유하여 주문진에서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성가를 가만히 불러보며 가을 정취에 잠겨본 하루였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어제 늦게 도착하여 피곤해서 ’9시 미사를 갈까?’ 하고 이불속에서 망설이다가 ’아니다, 새벽미사를 가자.’ 하고 새벽미사에 갔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주일에도 새벽에 미사를 가는 것이 습관이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예수님께 죄송한 듯한 느낌 때문에 부랴부랴 새벽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미사를 드리면서 ’바로 이 것이었구나’ 하면서 어저께의 정체모를 공허감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의 손길도 느끼긴 하였지만, 일행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일상의 반복되는 삶의 무게를 벗어나는 홀가분함과 자유로움도 느끼긴 하였지만, 웬일인지 이방인 같은 느낌과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은 듯한 바로 그 느낌이 어제 하루 내 저를 따라다녔던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때로는 습관적으로 새벽미사에 다니는 것 같은 부적절함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미사에 다니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었던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 주님을 두고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신 베드로 사도의 심정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일행들끼리 올봄에도 변산반도 쪽을 돌아보았었는데 그때는 강서구쪽에서 6시에 출발이라 하여 새벽에 잠원동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고 고속터미널부근에서 합류를 하였던 기억이 났습니다.
또 미사를 거르지 않기 위해 저녁에 수업을 받던 시절, 새벽에 미사가 없는 성유 축성 일에는 명동 성당에 까지 가서 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성체신심세미나를 받을 때 교재에 씌어 있기를 어느 성녀께서 "성체를 영하기 위해 불속을 걸어서라도 가겠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면서 제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 찼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에도 성지순례를 할 때에는 거의 미사를 드리게 되는데 직업과 관련된 해외 연수 때에 제일 괴로운 것이 미사에 참석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주님을 두고 제가 "이런 나들이에 빠지면 나는 점점 소외 될 거야" "때로는 주님이 지으신 자연 속에서 주님을 찬미 하는 것이 필요하고 유익할거야" 등의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서 주님보다는 나를 선택하였기에 느끼게 된 공허감이었습니다.
저의 영적인 눈 멂 상태를 깨우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심정으로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미사에 대한 습관이었지 않나? 라는 생각을 뛰어 넘어 주님께서는 비록 나의 부족한 태도의 미사참례를 통해서도 얼마나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계신가를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막의 샘과도 같은 당신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의미 할뿐이라는 것을 당신 안에 머무는 그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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