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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코가 석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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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31 조회수5,841 추천수45 반대(0) 신고

10월 31일 연중 30주간 금요일-루가 14장 1-6절

 

"너희는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더라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당장 구해내지 않고 내버려두겠느냐?"

 

 

<내 코가 석자인데>

 

저는 너무도 부당하고 부끄럽지만 수도자 양성 책임을 맡은 지가 벌써 3년째 접어듭니다. 양성책임자로서의 역할은 참으로 힘겹습니다. 매월 적어도 한번씩은 양성중에 있는 형제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여정의 동반자로서 어려움이나 하소연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은 첫 번째 가는 의무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취약점들이 무엇인지 늘 눈여겨보고서는 일일이 피드백을 해주어야 합니다. 내 코도 석자인데 너무도 괴로운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일이려니 하고 또 다시 용기를 내곤 합니다.

 

형제들을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지 외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으로 판단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영적인 스승이 되어달라"는 요구입니다. 또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제발 편애하지 말아달라"는 충고입니다. 또한 "부성애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한 그룹의 형제들과 한잔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최종적인 결론은 부성애였습니다.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네요. 한번은 제가 큰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몰던 승용차와 부딪친 차가 바로 폐차장으로 갈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물론 순식간에 자동차 보험 수가가 올라가서 책임자로부터 호되게 야단맞을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저나 상대편이나 두드러지게 신체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사고를 마무리하고 미안한 심정, 잔뜩 주눅든 얼굴로 맨몸으로 수도원으로 들어오던 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송구스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잔뜩 주눅들어서 들어서는 제게 당시 원장 신부님은 오직 한마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나?"

 

제 생애 안에서 참으로 잊혀지지 않은 순간입니다. 화가 잔뜩 날만도 하련만 "차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보상해주어야 할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제 걱정부터 해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존재라는 것, 바로 우리 각자의 구원을 위한 메시아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존재, 신적인 인물이셨지만 그에 앞서 따뜻한 피가 흐르던 한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언어,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한 인간이 겪고 있는 슬픔과 좌절 앞에서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인간의 슬픔 앞에 눈물 흘리시던 분, 한 인간의 고통 앞에 당신 역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전혀 엉뚱한 길, 죽음의 길을 지척지척 걸어가고 있는 한 가련한 인생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하시던 분, 무엇보다도 한 인간을 소중히 여기시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셨던 예수님의 자비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비록 우리가 비참하고 부끄럽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우리의 나약함에 다시 한번 의연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청하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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