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허물이 많기 때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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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11-02 | 조회수2,319 | 추천수27 | 반대(0) 신고 |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루가 14장 12-14절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허물이 많기 때문에>
유럽 어떤 지역의 한 수도회는 매년 사망이나 퇴회, 성소자 감소 등의 사유로 회원이 줄어들어 현상 유지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수도회는 더 이상 사업체를 운영할 능력이 없어 수시로 공동체를 폐쇄해야하기 때문에, 이 일만 전담하는 수도자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날이 눈에 띄게 뒷걸음을 치고 있는 지역교회가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 눈부시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 지역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부류의 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 여부입니다.
교회의 성장과 퇴보와 관련해서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보다 밑으로 내려가는 교회, 굳은 일을 절대로 마다 않는 교회, 보다 귀찮은 일을 선택하는 교회, 보다 피곤한 사목에 투신하는 교회나 수도회는 절대로 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바처럼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등등의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배려하는 교회나 수도회는 어딜 가나 활짝 꽃피어나고 있습니다.
유럽 교회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들 걱정이 많지만 언젠가 방문했던 유럽의 한 마약 치료 공동체(한 사제가 운영하고 있는)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협력자, 후원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시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보통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 한 가운데 현존하기 위해 겪게 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성심성의껏 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또 다시 원점에서 새 출발해야 하는 맥빠짐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도와주면서 최선을 다했건만 결국 드러나는 최종적인 결과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자주 우리가 체험하는 일상적인 감정은 좌절감과 배신감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일 한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중에 있는 사람들, 악습을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업신여기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건설하고자 하셨던 공동체는 죄인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공동체, 나약한 인간들의 갖은 악습과 인간적인 결함, 그간 쌓아온 깊은 상처를 감싸안는 공동체, 그래서 결국 인내와 사랑과 진심 어린 형제적 충고를 통해 정화의 길을 걷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들을 한번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들 그 사이에 자주 머무르셨습니다. 그들의 절친한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딱함을 나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앞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실망치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어깨를 펴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우리의 예수님은 약자의 주님, 가난한 사람들의 하느님, 죄인들의 구세주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허물이 많기 때문에, 지독하게도 가난하기 때문에, 너무도 크나큰 죄인이기에 주님의 도움을 받고 구원에로 나아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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