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성 레오 대교황)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속사랑- 인생은 미완성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11-10 조회수1,570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3년 11월 10일 (월) -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 성 대 레오 교황(440-461) 학자

  오늘 성 대 레오 교황 학자에 관한 좋은 말씀은 성바오로 선교네트의 가톨릭 정보 -> "교황" -> "영도자의 권위 굳힌 대교황 레오 1세"를 참고하세요. 인터넷 주소 ->

http://bomul.catholic.to/pope/104.html

    

[오늘의 복음]  루가 17,1-6

<하루 일곱 번이나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2)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3)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4) 그가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이성보다 강한 믿음

 

  오늘 복음은 우리가 마태오복음의 여기 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별 주제들을 루가가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루가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주제들을 오늘 복음에 묶어 놓았는데, 그것은 죄의 유혹에 대한 경고(1-3a절; 마태 18,6-9), 잘못의 꾸짖음과 용서(3b-4절; 마태 18,15-22), 그리고 믿음의 힘(5-6절; 17,14-20; 21,18-21)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그 원래의 모양이 예수어록에 있는 것으로서, 마태오는 살을 붙였고, 루가는 깔끔하게 그 뼈대만 묶어 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과 희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강하고 큰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하고 작은 것이 있고, 경우에 따라 쉽게 변하기도 한다. "사는 것이 죄다"는 말이 있듯이 삶 자체가 사람에게 죄악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환경이나 때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죄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를 요약하여 전통신학에서는 세속, 마귀, 육신이 죄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떠나서는 사람이 살 수 없고, 모름지기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볼 때 죄악의 유혹은 어디에나 있으나, 남을 죄짓게 하는 행동은 참으로 불행한 짓이다. 남의 작고 약한 믿음과 희망을 무너뜨리고 좌절시키는 행동은 철저하게 근절되어야 할 것으로 예수께서 가르치신다. 남은 죄짓게 하는 사람은 죽는 편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은 자신을 죄짓게 하는 눈, 손, 발을 잘라 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과 같은 맥락의 가르침이다.(마태 18,6-9)

 

  자신을 죄짓게 만드는 신체의 일부인 눈, 손, 발을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는 딱 잘라 말해서 아무에게도 없다. 하물며 잘못한 형제를 어떻게 칼로 내리칠 수 있겠는가? 죄를 짓는데 있어서 내가 남의 원인이 되고, 남이 나의 원인이 된다면 서로의 잘못을 견책(譴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인 동시에 미덕(美德)이다. 타인의 잘못에 직면하여 화부터 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하지만 꾸짖음은 인간의 이성에 속한다. 그렇다면 꾸짖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잡아 주기 위한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용서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견책과 용서는 서로 붙어 다니는 것이다. 이는 잘못의 횟수와 상관없이 모든 경우의 잘못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남을 죄짓게 하는 원인이 되고, 꾸짖음과 용서를 함께 베풀 수 없는 처지를 깨달은 제자들이 결국에는 그들의 약한 믿음을 고백하고, 강한 믿음을 예수님께 청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인간성(人間性)의 아주 낮은 단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결코 그렇지 않다. 믿음은 인간의 본성(本性)보다, 이성(理性)보다 뛰어난 것이며,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겨자씨 한 알만한 것이라도 충분하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