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3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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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1-15 | 조회수1,460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 2003년 11월 15일 (토)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 성 대 알베르토 주교 학자 기념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베르토 성인과 그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부러워할 것이다.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이토록 학문에 대성(大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알베르토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리스도교 진리에 접목시켜 스콜라신학의 기초를 놓았고, 자연 과학, 논리학, 수사학, 수학, 천문학,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 형이상학 등 모든 학문영역에 "만물박사"(Doctor universalis)였으며, 이미 당대 사람들이 성인의 이름 앞에 "대"(大; Magnus)자를 붙였다. 성인은 1206년경 독일남부 다뉴브(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라우잉엔에서 막강한 영주이자 기사계급의 혈통으로 태어났다. 알베르토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 많고 부지런했다. 이러한 성격이 그를 만물박사가 되게 했던 것이다. 일찍부터 파도바에서 공부하여 1223년 도미니코 수도회원이 되었고, 쾰른, 힐데스하임, 프라이부르크, 슈트라스부르크, 파리 등지에서 수학하고 문하생들을 가르쳤으며, 1260-1262년에는 레겐스부르크 교구를 맡아 교구장을 지냈다. 성인은 1274년 제2차 리용공의회의 교부로 일하였으며, 그후 쾰른으로 돌아와 1278년까지 대학에서 가르치고 저술에 힘썼다. 성인은 1280년 세상을 떠났고, 1622년 시복, 1941년 시성되었다.
[오늘의 복음] 루가 18,1-8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이 부르짖으면 올바르게 판결해 주실 것이다.>
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2)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4)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5)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 같으냐? 8)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인내와 끈기의 기도
오늘 복음의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들어주는 거만한 재판관의 비유"는 루가에만 있는 고유사료이다. 비유의 목적은 루가가 즐겨 주제로 삼아 보도하는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것도 인내와 끈기를 동반한 기도의 자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점은 비유에 있다기보다는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격려에 있다. 그것은 오늘 복음이 기도에 대한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종말을 대비한 유비무환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비유의 내용처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언제나 기도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복음에서 인자의 재림과 종말에 관한 표징들이 언급되었다.(17,20-37)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일상(日常) 안으로 종말이 들이닥친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더욱이 그 날이 언제가 될지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다리를 펴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언제나 기도하되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하는데 있어서 얼마만큼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들어주는 거만한 재판관의 비유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으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신 후에 성가실 정도로 끈질긴 친구의 청에 빵 세 개를 내어주는 비유(11,1-13)를 상기시킨다. 성가실 정도의 끈질긴 간청을 어제는 친구가 들어주고, 오늘은 거만한 재판관이 들어줄지언정 내일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8b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쉽게도 예수께서는 종말을 기다리다 지쳐 이미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을 내다보시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간청하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치 불구하고 끝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11,9)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블레이스 파스칼(1623-1662)의 기도: "하느님, 저는 부요함이나 청빈을 청하지 않겠습니다. 건강이나 병도 청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생명이나 죽음을 청하지도 않겠습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저의 부요함이나 청빈을 저의 건강이나 병을 저의 생명이나 죽음을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에게 주시거나, 아니면 앗아가십시오. 하지만 저로 하여금 항상 원하게 하옵소서. 당신께서 오직 바라시는 것을... 아멘."◆[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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