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모승천 축일에 황당한 경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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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임용학 | 작성일2000-08-16 | 조회수2,979 | 추천수17 | |
† 찬미 예수님
오랫만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미사중에 애기 울음소리가 나면 분심이 든다고 하거나 성가 잡쳤다고 애기 엄마에게 눈총을 보내지는 않는지요? 그런데 저는 미사중에 애기들 하고 곧잘 장난도 치는 개구쟁이 짓을 합니다. 특히 시골 본당이면 유아실이 따로 없거든요
또 하나 음정 박자가 도무지 무관한 분들과 성가를 부를 때는 어떠한 지요? 차마 자리를 옮기지는 않겠지만 아예 성가를 부르지 않는 경험 한 두 번은 갖고 계시지 않나요? 그래도 옥타브에 상관없이 어려운 곡을 애써 따라 부르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악보는 보지 않고 가사만 열심히 낭송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미사가 엉망인가요? 전 그 분들을 볼 때마다 왠지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보다 더 간절한 무엇을 가슴에 담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성가 가족이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일반 신자들이 성가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는다고 핀잔들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는 낯선 본당에 갔을 때에도 성가대 석에서 노래하듯 큰 소리로 노래를 하시나요? 쑥스러워서 잘 못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미사 참례기를 쓰시던 김건정 빠뜨리시오 형제님과 뉴욕공연에 동참키로 약속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어 시간이 좀 있었지요. 그래서 강원도 횡성 시골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성당에 들어가는, 의자가 없는 전형적인 옛날 성당이었습니다. 첨례날이라 성당이 비좁더군요 안내자가 앞으로 당겨 앉아 주십사고 서너 차례 멘트를 하기에 제대 가까이 앉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었지요
성가대가 없었기 때문에 입당성가 때에 아무래도 제 목소리가 튈 수밖에 없었는지 생면부지의 수녀님으로부터 돌발적인 주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꾸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성수예절이 거행되고 성주간에 성가대만 부르는 67번 ’성전 오른편에서’를 혼자서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알렐루야의 시편창과 창미사곡, "아베마리아" 특송까지 난생처음 방문한 성당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수녀님께서 골라주시는 성가를 거절도 못하고 순간 순간 열심히 부를 수밖에 없는 조금은 황당한 경우를 겪게 되었지요.
8명의 어린이들이 첫영체를 하였고, 성세 서약 갱신식에 초 봉헌과 신자들 모두 양형 영성체까지 하느라 미사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당연히 성가도 준비한 것 외에 긴급 추가할 수밖에요. 숨돌릴 사이도 없이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손수건을 건네시는 수녀님의 얼굴에 물방울이 가득함을 보며 ’주어진 소임에 참 열심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수녀님께서 잘 아는 사람을 첨례날에 초대하셨나 보다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미사후 수녀님께서 점심 대접하시겠다는 것을 억지로 물리치고 돌아 왔습니다.
주제넘게 제가 잘난 척 한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자로써 그래도 쓰일 곳이 있어 제게는 기쁜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려는 것입니다. 보편교회에서 자신의 본당이 아닌 어느 미사에 참례하던지 주님의 십자가 제사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자세를 깨닫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영성체 후 이런 기도를 바쳤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도구로 써 주심에 감사드리고, 우리 성가게시판을 열어보시는 모든 분들이 저처럼 예기치 않은 경우를 당하더라도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도구로써 용기 있게 주님을 위한 성가를 죽는 날까지 바칠 수 있도록 해 주십사고 말이지요.
문득 제가 철이 없었을 때 저를 일깨워 주신 분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의 재능이 네 힘으로 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피조물의 자세이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1909년)이고 이 땅의 네 번째 성당인 강원도 풍수원 성당(1888.6.20 본당설립)에서 오늘 첨례를 지내게 된 소감(성가의 외적인 부분)을 말씀드려 봤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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