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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음악 속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나의 힘! - 임 쓰신 가신관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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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3 조회수2,590 추천수2

[음악 속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나의 힘!


'임 쓰신 가시관'의 뒷이야기

 

 

1986년 서울 가톨릭대학 4학년, 당시 노래를 좋아하는 학우들과 신부님들의 사랑으로 발표된 ‘임 쓰신 가시관’, 이 성가는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을 성가가수라는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사람들이 내 이름 석 자는 몰라도 ‘임 쓰신 가시관’을 만들고 부른 사람이라면 존경을 표현하곤 했다. 이처럼 나를 영광스럽게 하고 겸손하게 만든 곡, 나를 살리기도 하고 신학교에서 나오게도 했던 곡, 결혼도 성가지휘도 하게 해주고 곳곳에 하느님의 영광을 알릴 수 있게 한 곡, 이 자리를 빌려 이 곡에 얽힌 추억 하나를 전하고 싶다.

 

 

4년 전의 잊지 못할 추억

 

2007년 겨울, 여느 연말처럼 본당 송년회와 레지오 연차총회에 초대받아 다니던 중, 서울의 어느 본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낮에는 자매님들 레지오 총회, 저녁에는 남성 사목위원들을 비롯한 구역장들, 단체장들 모임 때에 레크리에이션을 맡게 되었다.

 

낮에는 자매님들의 대단한 환호 속에 성공적으로 공연과 레크리에이션을 마쳤고, 여세를 몰아 형제님들의 만찬과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려고 하였다. 해마다 이 본당에서는 신나는 레크리에이션으로 남성 신자들의 노고를 풀어주곤 했다는 이야기를 담당자에게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신자들이 웃어주기는커녕, ‘당신은 누군데 여기 있는 거요?’ 하는 살벌한 분위기로 흐르던 참이었다. 어디를 가든 ‘신상옥’이라는 이름만 들려주어도 대체로 호감을 보이곤 했는데, 이분들은 내 이름을 모를뿐더러 노래 실력이나 매너 등이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1부가 끝나고 ‘가요와 복음성가, 트로트가 별로였나?’ 하고 자책을 하고 있을 즈음, 탱고 리듬에 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어떤 신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분은 “자네가 신상옥인가?” 하고 물었고, 나는 그냥 “네!”라고 했다.

 

나는 2부 행사(신자들 장기자랑)를 진행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급기야 자신감을 상실한 나의 진행에 사람들은 식상해하였고, 1950-60년대 가요를 신청해도 노래를 모르니까 이래저래 서로 난감해하는 분위기였다(이전까지는 노래방 기계로 했는데 그때는 통기타 라이브로 하였다).

 

이제 본당신부님 순서가 다가왔는데 신부님은 보이지 않고, 본당 총회장님은 마이크를 거의 뺐다시피 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간 4년여 동안 이 자리를 빛내주시고 우리 남성 신자들을 너무 사랑해 주시는 우리의 형! 영원한 아버지, 신부님의 입장 세러머니를 보시겠습니다!”

 

남성 신자들의 함성소리와 멋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시면서 신부님이 입장하셨다. 화려한 춤이 계속될수록 신자들의 환호와 감동은 더해지고 그분은 무대 위 나의 곁으로 다가오셨는데, 아뿔싸! 아까 화장실에서 봤던 하얀 옷의 신사, 탱고를 추던 약간 밤업소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내 춤은 끝나고 뜨거운 박수에 이어, 해마다 정례적인 또 하나의 노래 세러머니! 신부님은 모두 일어나서 부르자고 하셨다.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다. ….”

 

내 마음은 황당, 위안, 눈물, 감동, 설렘,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노래를 마친 뒤, 신부님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20여 년 전 사제생활의 기쁨이 없어져 사제복을 벗으려 할 때 신학생들이 부른 노래를 테이프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내가 있던 본당에서 신학생들이 불러주었을 때 나를 회개시키고 남몰래 엉엉 울게 하며 사제의 기쁨으로 충만케 했던 이 노래, ‘임 쓰신 가시관’을 만들고 부르신 분을 오늘 만났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행사장은 ‘그 사람이 어디 있지?’ 하며 두리번거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신부님은 나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신상옥 안드레아이십니다.” 하시며, 나에게 큰 인사를! 낯이 뜨거워지고, 나는 나대로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서로 미안해하였다. 행사장 분위기를 사랑으로 거룩하게 만드신 신부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하셨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생각난다. 주님께서 신학교 2학년이었던 스물한 살의 나에게 힘내라고 주셨던 이 곡, ‘임 쓰신 가시관’이 이제는 이 노래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님을 예고하셨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신자들과 함께 신나고 거룩하게 살라고 주님께서 선물을 주셨다고 고백하고 싶다.

 

어느덧 성가 찬미생활 20여 년, 다른 노래는 몰라도 ‘임 쓰신 가시관’만큼은 꼭 부른다. 내 삶의 숱한 곳에서 나를 살려낸 이 노래를 죽을 때까지 부르다가 주님을 만나고 싶다. 주님은 영원토록 찬미받으소서! 김대건 신부님의 하느님이시며 김수환 추기경님의 하느님이시고, 2007년 서울 어느 본당신부님의 하느님이시며, 가시관을 쓰신 하느님,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 신상옥 안드레아 - 생활성가 가수 겸 작곡가.

 

[경향잡지, 2011년 8월호, 신상옥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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