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음악의 세계: 자비송(Kyrie, eleis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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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3 | 조회수4,624 | 추천수0 | |
[전례음악의 세계] 자비송(Kyrie, eleison)
<참회 예식에서 자비송(Kyrie, eleison)을 이미 바치지 않았으면, 참회 예식 다음에 늘 자비송을 바친다. 자비송은 신자들이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관습에 따라 모든 이가 바친다. 곧 백성과 성가대 또는 백성과 선창자가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바친다. 자비송의 각 구절은 보통 두 번 반복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언어와 음악의 특성 또는 상황에 따라 여러 번 되풀이할 수도 있다. 참회 예식의 한 부분으로서 자비송을 노래할 때는 각 구절 앞에 ‘삽입구’를 덧붙인다.>(미사 경본 총지침 52항)
“자비송”은 미사 전례의 통상문(通常文) 중 하나이며, 음악적 형식으로 본다면 “보편 지향 기도”, “하느님의 어린양”과 더불어 도문(禱文; Litania) 형식에 속하는 노래입니다. 오늘날 이 세 가지 모두가 행렬 노래로 불리지는 않지만, 우리가 앞서 배웠듯이 도문 형식의 노래는 원래 성대한 참회 행렬이나 장엄한 축제 행렬을 따르며 부르던 노래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한 손에 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린 아이의 손을 쥔 사람이 노래책을 들고 행렬해 가면서 쉼 없이 노래한다는 것이 여의치 않음을 생각한다면, 짧은 구절을 반복하며 응답하는 도문 형식의 노래가 행렬을 따르며 부르는 노래를 위한 매우 적절한 음악적 형식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사 경본 총지침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비송은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간청을 들으시는 “주님”은 조금 전 미사 거행을 시작하면서 행렬 십자가의 형상으로 장엄하게 성전으로 들어오시고 제단 위에 놓여지신 후, 지금은 모든 이 앞에 서 계시는 주님, 곧 승리자이신 영광의 그리스도요 자비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입당 행렬과 노래가 마무리되고, 십자가를 향해 깊이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주례 사제가 회중과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전례 공동체를 이룬 우리 모두는 이제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할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주님, 그리스도님, 주님”이라는 자비송의 세 번의 호칭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각 위격, 곧 성부, 성자, 성령께 드리는 호칭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만, 이러한 해석은 중세 시대에 생겨나고 크게 유행했던 비(非)전례적 음악 형식인 ‘트로푸스(Tropus)’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며, 따라서 전례 지침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라고 해서 지나치게 애절한 마음과 구슬픈 가락으로 자비송을 노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비송은 “환호하며”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안에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분을 향해 외치거나 소리를 지릅니다.(참조: 마태 9,27; 15,22; 마르 10,47 등) 주님을 향한 그들의 이러한 “외침” 안에는 이미 그분의 자비와 능력에 대한 확신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믿음을 확인하시고, 그들에게 항상 당신의 자비를 기꺼이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자비송을 노래할 때에도 주님의 자비에 대한 이러한 신뢰와 확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곡(Kyriale)의 Kyrie의 선율(Melisma)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적인 변화를 거듭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아주 오래된 작품인 Kyriale XVI이나 XVII의 Kyrie는 매우 겸허한 자세로 간절히 애원하는 듯한 선율로 노래되는 반면, 후대로 갈수록 감탄하며 찬미하듯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선율을 갖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자비송의 구절은 보통 두 번 반복하며, 상황에 따라 여러 번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다성음악의 형식 안에서 자비송의 구절들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만, 지나친 반복은 시작 예식의 역동성이 지닌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므로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사 전례 중 참회 예식(Actus paenitentialis) 세 번째 양식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자비송을 참회 예식과 결합시킬 때에는 사제나 부제가 그날의 전례나 축일에 맞게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삽입구(청원 기도)를 자비송의 구절 앞에 덧붙이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기도문들도 우리의 죄악들을 주님 앞에 드러내려는 데 우선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우선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비송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짧고 반복되는 노래이지만, 우리가 주님의 자비를 얻어 누리기에 아주 효과적이고 힘 있는 기도임을 아셨을 것입니다. 동방 교회의 수도승(修道僧) 전통 안에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이 짧은 기도문만을 반복해서 외며 평생을 살아가는 수도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전례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또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주님을 신뢰하며 자비송의 한 구절을 정성껏 바친다면 아주 좋은 기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월간빛, 2011년 8월호, 곽민제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례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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