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가 이야기: 성가(찬미가)의 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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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04-24 | 조회수3,313 | 추천수0 | |
[성가 이야기] ‘성가(찬미가)의 가사’ “어, 저 놈 봐라!”
몇 년 전 교구 젊은이들의 생활성가 창작곡 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요한과 자동차’라는 곡이 은상을 받았는데 그 가사 내용 중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요한이라는 청년이 자동차를 구입하여 시운전을 나갔는데 딴 차가 끼어들었고 요한이 “어, 저 놈 봐라!”하는 가사가 있었다. 그날 심사평에서 “이런 노래를 성가라고 하였는데 과연 미사 중의 어느 부분에 이 노래를 사용하면 좋을까? 주례사제가 입장할 때? 아니면 영성체할 때 성체로 오시는 주님을 향해?”하고 물었다. 독자들은 이 곡을 언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이런 가사는 비단 생활성가 쪽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어느 교구의 평협에서 성가의 노랫말을 공모하였는데 소록도에서 봉사하다 떠나가신 외국인 수녀님 세 분의 희생과 봉사를 묘사한 노랫말에 상을 주었다. 이 것 역시 미사 때 사용할 수 있는 노랫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새 성가집 발간을 준비하는 요즈음, 주교회의 산하 성음악소위원회에서도 가사 모집을 하였다. 입상은 되지 않았지만, 가사의 처음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중국 땅을 쳐들어가자.”로 시작하는 것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성가가사들을 몇 개 선보였다. 1월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가사는 바로 찬미가(찬송가)의 가사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독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례기도문을 노래로 만든 것 이외에 개인이나 교회 혹은 단체들이 만든 가사들은 교회의 인준을 받아 찬미가의 가사로 사용된다. 위의 가사들을 소개한 이유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불리어지고 있는 많은 생활성가를 포함해서 찬미가(찬송가)의 가사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비단 작사자의 자질에 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공모하는 주체나 심사위원들조차도 ‘성가(찬미가)’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성가 혹은 찬미가가 무엇인지를 안다면(찬미의 대상은 하느님이 되어야 하고 그 내용은 찬미와 감사가 되어야 한다.) 미사전례에는 사용할 수 없는 가사들, 의미 없는 미사여구의 남발, 가톨릭교의에 어긋나는 가사들, 문학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 그리고 가요풍의 질 낮은 가사들을 왜 뽑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1) 전례란? 그리고 성가란? 위에 지적한 가사의 문제점은 결국 ‘성가’ 혹은 찬미가(찬송가)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성가가 불리어지는 현장, 즉 전례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지면 관계상 우리는 이곳에서 미사전례와 찬미가(찬송가)의 가사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전례는 예배를 위한 신자들만의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분의 지체인 신자들이 함께 모여(교회를 이루어)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 최고의 예배행위이다.(전례헌장 10항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사업의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고,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를 통하여 지금도 그 구원사업을 계속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간을 성화시키는 이 거룩한 전례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즉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전례에 모인다. 그래서 전례에 모인 신자 공동체는 바로 찬미공동체인 것이다. 이 찬미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간택된 백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국민,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기에, 당연히 전례에 참여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다.(전례헌장 14항 참조) 이 찬미 공동체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해 기도와 성가로 응답한다. 이곳에서 말하는 성가에는 전례기도문을 노래로 만든 것(전례성가)과 전례기도문은 아닐지라도 교회나 개인이 만든 가사를 노래로 만든, 보통 운율과 절의 형태로 되어 있는 성악곡인 찬미가를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기도와 성가의 내용은 바로 찬미와 감사로 특징지어진다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전례 때에 사용하는 찬미가(찬송가)를 단순히 노래로 생각한다면 어떤 내용의 가사든지 전례 때에 노래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겠지만,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으로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전례 때 사용하는 음악, 특별히 찬미가(찬송가)는 그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어떤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전례 때의 행동이나 동작, 기도와 마찬가지로 노래나 성가의 가사는 감사와 찬미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제약과 동시에, 미사 구조의 각 부분이 요구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성가 가사의 내용은 찬미와 감사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 표현들보다도 매우 뛰어난 교회의 보고이다.(전례헌장 112항 참조) 그 이유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말씀과 깊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 성대한 전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이루기 때문이다. 음악 특히 성가는 ‘노래하는 기도’로서 예배의 중심이 되는 말씀을 강조하고 이 말씀에 봉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음악은 노래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 서로를 결합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교회가 전례 때에 사용하는 음악은 노래 부르는 신자들을 노래의 원천이며 내용이신 그리스도와 결합시킨다고 하여 교회음악(성가)을 단순히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례의 큰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찬미가의 가사는 어디에서 취하는 것이 좋은가? 전례헌장 121항을 보면 성가의 가사는 “언제나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서와 전례에서 취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성경과 전례에서 취한 언어는 어떤 언어보다도 전례 안에서 음악의 힘을 강조하고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를 이끈다. 위의 항에서 “언제나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라는 구절에도 유의하기 바란다.(한국어판에는 이 말이 없다.) 성경이나 전례기도문에서 취하지 않은 가사라도 성가(찬미가, 찬송가)의 가사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 내용은 가톨릭 교리와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성가의 가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공동체의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는 개인의 신앙적 체험이나 더 나아가 희로애락 그리고 감성을 읊은 가사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하고 있다. ‘I - My - Me’ 증후군이 심각하다. 공동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가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찬미공동체가 가진 공동의 신앙을 같은 가사와 가락으로 노래할 때 마음과 신앙의 일치를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가톨릭교의에 맞지 않은 가사, 문학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가사, 가요풍의 질 낮은 가사 등 결코 전례에 맞지 않다.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예배행위인 전례에 우리는 최고의 가사로 된 최고의 찬미가를 불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시를 사랑하는 신자들에게 성음악 훈령 4항은 ‘하느님께 바치는 음악은 질적인 면에서도 우수해야 하고, 찬미가의 가사 역시 우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교회음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찬미가의 가사를 전문적으로 작사가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좋은 가사가 있어야만 좋은 작곡이 나올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경과 전례기도문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신학생들과 신자들이 이들을 읽고 묵상하여 우리의 산 신앙언어로 표현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초기 교회신자들은 글을 읽지 못해 시편을 외우고 성가 가사로 기도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좋은 가사를 묵상하고 기도말로 대신 사용할 수 있을까? 좋은 가사를 노래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 자신이 거룩해 질 수 있기(전례헌장 1항과 112항 참조)’를 기도해 본다. [월간빛, 2012년 4월호, 김종헌 발다살 신부(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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