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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탄절이면 생각나는 꽃들과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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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1 조회수5,764 추천수0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탄절이면 생각나는 꽃들과 식물들

 

 

막막하고 절박한 처지나 상황에서 때로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한 줄기 빛인 듯, 한 줌 희망인 듯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성탄 즈음이면 생각나는 꽃들이 있다.

 

 

‘성모님의 별’이라 불린 옥스아이 데이지

 

세상을 구원하실 아기가 태어나셨다는 소문을 들은 동방박사들은 그 아기에게 드릴 예물을 장만해서는 부랴부랴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을까. 성경은 별 하나가 있어 그들을 안내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어떻게 아기 예수님이 계신 마구간을 찾게 되었을까. 교회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는 이쯤에서 옥스아이 데이지(Ox-eye Daisy)가 등장한다.

 

옥스아이 데이지는 국화과의 내한성 여러해살이풀이다. 1m 정도까지 자라고 5~6월에 향기 나는 꽃이 핀다. 꽃잎은 흰색이고 꽃의 중심부는 짙은 노란색이다. 학명은 크리산테뭄(Chrysanthemum)인데, 이 이름에서 꽃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그리스어로 ‘노란색’을 뜻하는 크리소스(chrysos)와 ‘꽃’을 뜻하는 안테몬(anthemo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옥스아이 데이지는 관상용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식자재로도, 약재로도 쓰인다. 부드러운 싹은 샐러드 재료로 쓰이고 다 자란 뿌리와 잎은 음식 재료로 쓰인다. 잎과 꽃은 강장제로, 근육 경련을 막아 주고 상처나 멍을 치료하는 치료제로, 뿌리는 폐결핵으로 인한 땀 흘리는 현상의 완화제로, 이 식물을 추출한 액은 결막염 완화제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교회에는 이렇듯 유용한 식물인 옥스아이 데이지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온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밤,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이 어느 산기슭에 이르러 잠시 머물면서 기도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별 하나가 귀여운 아이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그들은 그 별을 좇아서 베들레헴까지 왔지만 아기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 어떤 표시라도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문득 희고 노란 꽃 한 송이가 멜키오르의 눈에 띄었다. 평소에 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지만 이제껏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해 온 별과 비슷하게 생긴 꽃이었다. 멜키오르는 허리를 굽혀 그 꽃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마구간의 문이 열렸고,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뵙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이 꽃을 ‘성모님의 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모님께서 빨래 널어 말리신 풀덤불’이라 불린 라벤더

 

좋은 향기를 풍기는 식물 라벤더(lavender)는 꿀풀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오늘날에 유럽,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기후가 온화한 곳에서 관상용으로, 식자재용으로, 향유 채취용으로 널리 재배된다.

 

라벤더는 햇볕이 잘 들고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잘 자란다. 보통은 30~60cm, 잘 가꾸면 90cm까지 크며, 6~9월에 연한 보라색이나 흰색 또는 분홍색 꽃을 피운다(색으로서 ‘라벤더색’은 연보라색을 가리킨다). 꽃, 잎, 줄기 전체에는 흰색 털이 나 있다. 그리고 털들 사이에는 향기가 나오는 기름샘이 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라벤더가 풍기는 향기를 좋아해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할 때 물에 라벤더를 넣어서 사용했다. 또 라벤더 꽃을 말려서 서랍이며 벽장에 넣어두어 공기를 향기롭게 하고 나아가 정화했다. 그리고 라벤더에서 추출한 향유를 요리에 이용했다. 고대 유럽에서는 라벤더를 갈거나 즙으로 만들어 향수로 사용했고, 영국에서는 라벤더를 살균과 병해충 구제에 사용했다. 한편, 고대 이집트, 페니키나, 아라비아 등지에서는 시신을 방부 처리할 때 라벤더를 향료로 사용했다.

 

라벤더의 학명은 라벤둘라(Lavandula)인데, 이 이름이 라틴어로 ‘씻다’라는 뜻의 라바레(lavare)에서 유래했거나 아니면 ‘푸르스름하다, 시퍼렇다’라는 뜻의 리벤둘라(livendula)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고 보니 로마 사람들이 목욕이나 빨래를 할 때 물에 라벤더를 넣기를 좋아했다거나 꽃의 색이 보라색이라는 점과 연결되기도 한다.

 

라벤더에는 진통, 정신 안정, 살균, 방충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위장 장애를 완화하는 데에, 두통이나 불면증이나 신경 불안 증세를 진정시키는 데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가벼운 상처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에, 곤충을 퇴치하는 데에, 식욕을 증진시키고 기분을 좋게 하는 데에 두루 쓰여 왔다. 라벤더의 꽃말들 중 하나가 ‘침묵’인 것도 라벤더에 흥분을 가라앉히는 진정 효과가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라벤더의 꽃은 순수함(정결), 침묵, 헌신, 평정(평온), 은총, 고요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라벤더 꽃의 대표색인 보라색은 왕족 또는 왕실의 색상으로서 우아함, 세련됨, 화려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교회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쓸모 많고 세련된 데다 좋은 향기까지 풍기는 라벤더가 처음부터 향기를 지녔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득한 저 옛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라벤더를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그때는 라벤더에서 향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 뒤에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예전에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를 대신 기워 갚고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렇지만 구세주로 오신 분의 생애가 초기부터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신 지 불과 며칠 만에 멀리 이집트로 급히 피난을 떠나셔야 했다. 그 피난길에서 잠시 쉬어가는 짬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는 빨래를 하셨고, 아기 예수님의 옷가지들을 라벤더 덤불에 널어 말리셨다. 그때부터 라벤더에서는 좋은 향기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라벤더를 일러서 ‘성모님께서 빨래 널어 말리신 풀덤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아기 예수님의 각별한 배려를 받은 라벤더가 악에 맞서는 신성한 수호물로 여겨질 법도 하다. 실제로 서양의 많은 그리스도인 가정들에서는 라벤더를 십자 모양으로 엮어서 그리스도의 가호를 빌며 문 위에 걸어 둔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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