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 |||
---|---|---|---|---|
이전글 | ■ 10.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2/2] / 활동 준비기[1] / 부스러기 복음[10] |2| | |||
다음글 | 목공예를 하다가 |1|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7-13 | 조회수37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3년 07월 14일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를 예고합니다. 유다인들은 제자들을 박해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박해에도 그리스도교는 많은 이에게 전해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박해는 점점 거세어지고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라는 미카서 7장 6절을 떠올립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입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행은 다른 어떤 고통보다 더 크고 무겁습니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러한 결과는 그만큼 박해가 심해질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런 표상은 종말론적인 재앙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깝게는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서 시작하여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름은 그 사람 전체를 나타냅니다.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박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책들이 많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종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리라고 예고합니다. 이럴 때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꼭 박해가 아니더라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