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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학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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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1 조회수391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학자 기념] 마태 13,36-43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 설명하시는 부분입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악인들이 제멋대로 활개를 치는 어지러운 현실속에서도 그들에 대한 심판을 미루시고 기다려주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자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오늘 복음에서는 그런 하느님의 자비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악인들에게 내려질 준엄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이라는 좋은 씨를 받아 그것을 순명과 실천으로 충실히 가꿔온 이들이 ‘회개’라는 열매를 맺는 세상 종말의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를 그 결실에 따라 구별하여 처분하는 ‘심판’이 있을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하느님께서 특별한 직무를 맡기신 천사들에 의해 이루어질거라고 하시지요. 이는 심판에 대한 주권이 하느님 아버지께 있다는 원칙을 단호하게 천명하신 겁니다. 또한 세상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두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세상 속에서 죽는 날까지 ‘밀’, 즉 하느님 뜻을 따라 사는 그분 자녀로 살아가면서 회개라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두시는 것은 선인들이 악인들에게 괴롭힘과 피해를 당하도록 ‘방치’하시는게 아닙니다. ‘근묵자흑’이라고 우리가 악에 쉽게 물들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악에 협조하거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악을 방조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온갖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 혼자만 ‘독야청청’해서 구원받으면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인내와 자비로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는 시간 동안, 우리 곁의 악을 선으로 물들여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할 소명이 있다는 뜻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며 살아가는 우리가 내뿜는 믿음의 ‘빛’이 아직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하고 바른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함께 찬양하도록 해야할 ‘빛과 소금’으로써의 소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사는가입니다. 불의한 세상과 담을 쌓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건 ‘밀’인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과 영혼이 피폐해질 뿐입니다. 밀이 낟알을 맺는 것은 아낌 없이 나누고 베풀며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제 이익도 못 챙기는 ‘호구’나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사는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축복하시며 당신 나라에 받아주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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