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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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8-03 | 조회수43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마태 13,47-53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에 빗대어 설명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어부들이 사용하던 그물은 길이가 4-500미터, 너비가 2-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기에, 상황에 따라 자주 접었다 펼쳤다 하는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구조 때문에 한 번 그물을 치면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수의 물고기들이 갇힐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맛이 좋고 값 비싼 고기들만 골라서 잡을 수도 없었기에 일단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다 배 위로 건져올린 뒤에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다시 바다에 던지는 선별 작업을 진행했지요.
예수님은 그물의 바로 그런 점들이 하느님 나라와 비슷하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이라는 그물을 넓고 깊게 펼쳐둔 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의 내 상태가 어떤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들 뿐만 아니라, 그분 뜻을 거스르고 본능을 충실히 따르며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이들도 그 그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그러다 그 그물이 가득 차면 세상엔 종말이 시작되고, 그 그물에 갇힌 모든 이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 공정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변화된 이들은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고, 아직 회개하지 못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나쁜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들은 멸망하는 세상 속으로 던져져 뒤늦은 후회와 절망의 탄식 속에서 세상과 함께 멸망하게 될 겁니다.
이 비유에서 특징적인 점은 ‘하느님 나라’를 그물에 잡힌 좋은 물고기들이 가는 ‘종착지’가 아니라 ‘그물 자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 나라’라고 하면 세상 종말과 심판이 완료된 후, 하느님께 뽑힌 복된 이들이 그분과 함께 참된 행복을 누리는 구원의 ‘완료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그물’이라고 지칭하시니 결국 하느님 나라는 구원의 ‘진행 상태’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닌 하느님 나라의 특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또한 하느님 사랑이라는 그물에 걸려 있으면서도 고집과 완고함,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그분과 상관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렇게 날마다 그분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우리를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려주시고 함께 가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드넓은 사랑과 자비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 = 그물”이라는 도식입니다. 그리고 이 도식은 “하느님 나라 = 우리를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죄로 얼룩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탐하면 탐할수록 더 깊은 멸망으로 빠져드는 욕망의 늪 속에서 헤매지 말고, 내가 아직 하느님 사랑의 그물에 걸려 있는 지금 즉시 회개해야겠습니다. 아직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으니 우리에겐 구원의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마음이 주눅들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긴 채, 내가 사는 ‘현재’라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그분의 은총과 도움 속에서 날마다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희망으로 지금을 기쁘게 사는게 신앙생활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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