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9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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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8-12 | 조회수755 | 추천수8 | 반대(0) |
1980년 고등학교 때입니다. 성당 친구들과 문산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문산가는 기차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늦게 오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는 남아 친구들에게 표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저와 친하게 지내던 여자 친구를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제 친구는 저의 여자 친구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서울역에서 문산으로 가는 길에 둘이 더 친해졌습니다. 저는 나중에 문산에 도착해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여자 친구는 친구의 여자 친구가 되었고, 저는 둘이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는 아니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갔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43년 전 딱 이맘때의 일입니다. 친구들을 위해서 표를 전해 주었던 저를 하느님께서는 어여삐 봐 주셔서 제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제가 되는 동기는 거룩할 수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여름이면 ‘남량특집’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날이 더우니 무서운 내용의 드라마를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미호’였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한 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습니다. 저의 삶에도 남량특집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군대에 있을 때입니다. 저는 신학생이어서 성당 군종병으로 선발 되었습니다. 처음 3달은 잘 지냈는데 저의 부족함 때문에 성당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본부중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잔디밭에 거름을 주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몇 군데만 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니 거름을 지나치게 많이 뿌린 곳의 잔디는 노랗게 변하였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의 실수가 있었고, 신부님은 저를 다른 곳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입니다. 신부님의 엄한 질책이 있었기에 저는 남은 군 생활을 정신 차리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제가 되어서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목국에서 교육담당 업무를 할 때였습니다. 저는 4시에 강의가 있었지만 1시에 미리 와서 분위기를 보았습니다. 봉사자들은 제가 미리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위기를 대충 보았고, 성당 앞을 보니 ‘불가마’ 사우나가 있어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사우나에서 쉬고 있는데 방송으로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는 사우나에 방송 시설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한편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사우나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2시에 강의를 해야 할 신부님이 교통체증으로 늦을 것 같다고 연락했다고 합니다. 봉사자는 제가 있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와 시간을 바꾸면 된다고 했습니다. 봉사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봉사자는 제가 성체조배하는 줄 알고 성당에 갔는데 거기에 저는 없었습니다. 제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줄 알고 성모상 앞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사제관에서 신부님과 대화하는 줄 알고 사제관에 갔는데 거기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불가마에서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의 이름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저는 부랴부랴 사우나에서 나와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도 한편의 남량특집같습니다. 엘리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큰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성공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재물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권력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깊은 침묵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면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들 또한 신앙의 여정 속에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유혹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두려움의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빠지지 않고 주님께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인생과 역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어떠한 시련에도 의연하게 맞서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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