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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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8-16 | 조회수693 | 추천수4 | 반대(0) |
후배 신부님이 안식년을 얻어서 신문사에서 잠시 지내고 있습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처럼 후배 신부님에게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홈 디퍼’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조립하는데 아주 잘하였습니다. 저는 잘 보지 못하는 것을 유심히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브루클린 미사에 함께 하면서 강론을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더니 좋은 강론으로 교우들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공자가 이야기한 지혜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는 못하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이 있을지라도 덕을 베푼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이에 따라 갖추어야 할 지혜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15살이 되면 학문에 뜻을 두고, 30살이 되면 본인의 뜻을 세우고, 40살이 되면 삶에 부덕함이 없고, 50살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고, 60살이 되면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70살이 되면 어떤 행동을 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올해 60이 되었으니 좀 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지혜를 청하고 싶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우리 앞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요르단 강’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궤’를 앞세워 장애물인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지내던 때를 그리워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굶주림과 목마름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붙이를 모아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친 광야를 건널 수 있는 이정표였습니다. 십계명은 두려움이라는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 중에 90%는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저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욕심과 교만입니다. 욕심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갈증이 나기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욕심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부자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재물을 쌓아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보다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교만한 바리사이의 헌금보다 겸손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분노와 원망입니다. 분노와 원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용서와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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