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25.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 갈릴래아 활동기[2] / 부스러기 복음[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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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8-28 | 조회수33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1-23; 마르 4,1-20; 루카 8,4-15) / 공관복음[50]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경작법은 농부들이 먼저 씨앗을 땅에 뿌린 다음 쟁기질하여 흙으로 씨앗을 덮는 방식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 비유를 드셨다. “씨 뿌리는 이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밟히기도 하고 새들이 먹기도 한다. 어떤 것은 돌밭과 같은 바위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돋지만, 해가 솟자 타고 말았다. 물기가 없어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자라면서 덤불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서른, 예순, 백 배의 열매를 다양하게 맺었다.” 그 후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많은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물었다. “왜 저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지 못하는 책임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음을 말하려는 것 같다.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아보지 못하면, 하늘 나라 자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느냐, 거기서 제외되느냐는 예수님, 그리고 비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느냐 또는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중간한 자세는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예수님의 답변은 계속된다. “보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이를 그토록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 너희의 눈은 보고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고 있으니 행복하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그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된다.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런 이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또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마지막 답변이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 맺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어떤 이는 예순,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들을 귀 있는 이들은 잘 들어라.” 이렇게 대부분의 씨앗은 열매를 맺기 전에 말라 죽거나 쭉정이로 남거나 새들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좁은 땅일지라도 좋은 토질의 땅에 묻힌 씨앗은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예수님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록 소수만이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들 안에서 복음의 열매가 풍성히 열릴 것이라는 기대였다. 나아가 그분께서는 이 씨 뿌리는 사람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몰려드는 군중들을 만나시느라고 식사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쁘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26. 예수님의 참가족(마태 12,46-50; 마르 3,20-22; 31-35; 루카 8,19-21)’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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