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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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0-20 | 조회수28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루카 12,1-7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겉으로 그럴싸해보이게 자신을 부풀리는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위선이란 본래 자기 마음이 선하지 않은데 선한 것처럼 보이려는 행동을 말하지요. 위선이 생기는 이유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상처 입을까봐,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큰 손해를 입을까봐, 내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따돌릴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엄청나게 의식하게 됩니다.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미움받지 않으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인 척 자신을 꾸미고, 다른 이들이 보지 않을 때는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편하게 있으려고 하니 나라는 자아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나아길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 눈치 보지말고 하느님 앞에 진실된 모습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남들 눈치를 보며 그런 척 위선을 떨어도 언젠가는 나의 본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위선이 아닌 진실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안좋게 보면 어쩌나’하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내가 마음 속에 지니고 살아야 할 참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잘 식별해야 합니다. 그 식별의 기준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내가 하느님 뜻을 거슬러 그분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 영혼이 지옥에 던져지면 어쩌나 하는 부분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그분 뜻을 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쓸 데 없는 두려움으로 고통 받을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구원에 대한 확신 속에서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안에서 서로 부딪히는 모순된 두 말씀이 우리 마음을 헷갈리고 어지럽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시니 대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각각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차근차근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느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세속적인 것들에 연연하는 우리에게, 진짜 두려워할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소멸임을, 우리가 조심하고 신경써야 할 것은 세속적인 것들을 잃어버리는게 아니라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임을 일깨워 주시려는 겁니다.
하느님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모두를 포괄하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니, 하느님과의 관계만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분을 굳게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참된 희망이 남아있지요. 그런 희망을 간직한 이들은 육신의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두실 정도로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나를 세상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느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절대 잊지 않으시니, 당신을 닮은 자녀로 살기 위해 애써온 나의 수고와 노력들을 기억해 주시니, 그런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며 이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됩니다. 그 길의 끝엔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두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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