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로마서12)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 (로마4,23-5,4)
이전글 2024 갑진년 [세계 평화의 날] (루카2,15-21) |1|  
다음글 예수고난회 박태원 신부님 [1월 1일] 살아있는 매일의 지혜(근본과 더불어 시작하기) |1|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01 조회수202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4. 1. 1. (월요일)

 

로마서12)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

 

(로마4,23-5,4)

23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씀은 비단 아브라함만을 두고 하신 것이 아니라 24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들까지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2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를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은 하느님께서 예수 이전의 인류와 예수 이후의 인류를 양분하고 있다 라는 것이 지금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수 이전에는 인류가 하느님 앞에 배반하고 거역하여 스스로 자초한 멸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모두가 그렇다예외가 하나도 없다그 인류를 위하여 하느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이 인류를 자기가 자초한 죄와 멸망으로부터 예수 안에서 구원하였다이렇게 양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믿음으로 되었다는 것을 자꾸 오해해서율법이 아닌 것이라는 말을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만로마서에서는 아니라 그랬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우리가 조건을 내놔야 되고 자격이 있어야 되고 무언가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되는 것을 대표한다면믿음이란 그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

그래서 믿음은 율법과 행위와 반대편에 서서 믿음을 설명하는 다른 병행 단어는 은총이 되는 것입니다이제 더 나아가면 그것이 우리의 것으로서 어떻게 책임 있는 특권이 되는가도 알게 되겠지만로마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오늘 본문 23-24절 다시 보면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씀은 비단 아브라함만을 두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들까지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으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 그러니까 강조는 전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하느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믿음은 그다음에부터 나옵니다믿음이 가능한 것은아니 믿음이라는 단어는예수로 이해하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예수는 이미 오셨다 이겁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태어나서 예수를 믿게 되어 믿음을 고백하고 결단하여 신자가 됩니다그렇지요그런데 내가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면 그때 예수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그 예수는 2,000년 전에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신 분입니다이 시간상 역순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유명한 데카르트의 명제가 있습니다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뜻데카르트 철학의 제1명제그는 스콜라 철학에서 가르치는 진리에 의심을 품고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서 우선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회의론이 아닌 이와 같은 의심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부른다.

이 경우 데카르트는 의심하고 있는 '', 이것을 의식하는 ''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는 명석한 사실이라고 하고 그것을 진리 인식의 기초로 삼았다이 명제는 '따라서'(ergo)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추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사실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의식적 자아의 존재에 대한 직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근대적 개인의 자각이란 입장이라고 평가되어 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그러나 '생각하는 나'를 유일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오직 사고의 합리적인 연역에서만 진리를 찾는 것으로 되고여기에서 합리주의와 관념론이 나오게 된다. (철학사전, 2009)

철학으로 가려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생각해서 존재가 창조됐다는 뜻은 아니지요당연히 생각했더니 내가 생기더라 라고 얘기한 거 아니죠생각을 하는 거 보니까 내가 있더라입니다동일한 얘기를 구원에선 어떻게 얘기하냐 하면요한복음 9장에서실로암 사건내용이 기니까 제가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고치십니다난리가 납니다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불치병을 고치는 것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그는 예언자일 것입니다예수님은 예언자보다 큰 메시아입니다그 예언자약속한 자입니다구원자입니다근데 구원자는 고사하고 예언자인 것도 부정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대적하는 이단이라고 당시 사회에서는 예수를 비난하는 중인데예수가 불치병을 고쳤답니다그러면 최소한 예언자는 돼야 됩니다그러면 그 예언자와 반대편에 서는 사람은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됩니다그런데 그 사건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목격한 것입니다그 소경을 고친 사건을.

그러니 우길 수 있는 건 이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정말 고쳤냐?" 그 다음에 하나는 "정말 소경이었냐?" 그래서 부모에게 찾아와 "정말 소경이었냐?" 그 부모가 말 잘못하면 큰일 나게 된 줄 깨닫고 직접 물어보지요이렇게 됐으니 본인에게 왔죠. "너 정말 예수가 내 눈을 떠서 보게 했느냐?"

이 사람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습니다이런 답을 냈습니다"다른 건 다 모르겠고 안 보이던 게 보여요." 구원에 관한 중요한 예입니다구원을 받으면요안 보이던 게 보입니다. 이게 막연할 수 있고 모호할 수 있습니다이거 하나는 분명합니다주일날 교회를 안 가면 불편합니다모든 교인들이 요구하는 건 어느 교회 어느 시대나 단 하나입니다빨리 끝내주세요그런데 또 오는 겁니다불편하다니까요영혼이 불편하다고요여기 와야 힘을 얻어요그래서 주무시죠절대 강론설교는 고함을 지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조용조용 이발을 하듯이안마를 하듯이때를 밀 듯이 해야 옳은 것입니다알아들었을까 이 유머를.

내가 봐서 생긴 게 아니라 있었는데 몰랐죠있었는데 몰랐다구요알게 되면 지가 만들었다 그래요그때 처음 생겼다 그러고요.

하느님이 왜 이런 순서를 만들었을까요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현실이고순서상 순리인데하느님은 예수 안에서 2천 년 전에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죽으셨대요그래서 시대가 바뀌었대요이제는 새 시대다은혜의 시대다이렇게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데믿어야 내 것이 된다는 이차적인 문제라고 해요일단 믿고 나서도 보라고요그것은 그때 하시는 거예요이제 보니까.

그럼 왜 순서를오시고우리를 태어나게 하시고 후에죄인으로 태어나요그리고 새삼스럽게 믿어서 알게 하는가그게 왜 과거로 돌아가는가로마서에서, 4장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취소될 수 없게 하려고 그랬다결과부터 정해놓고너 태어나고너 믿어라선택해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먼저 일어났다고이게 뒤집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나중에 태어나지만 우리의 운명과 결과가 과거에 완료됐기 때문에 도망갈 데가 없다니까요이게 원래는 할렐루야아멘이렇게 가야 되는 겁니다근데 이제 이게 그 뇌에 과부하가 걸려가지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겁니다.

이게 성경이 얘기하는 복음입니다아브라함 얘기를 하는 것은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됐다는 뜻은 아브라함이 믿음을 바쳐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 아닌 것이그의 이름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이너는 만국의 아버지다그러고 자식을 안 줍니다결국 주시지만 그건 자기가 날 수 없었을 때 낳은 것입니다이건 니가 만든 게 아니다를 뭘로 확인했다고요이사악으로 확인했죠. ‘이사악 바쳐라.’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만든 자식 아닙니다하느님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이에요지가 자신이 얻은 결과를 만들어낼 조건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이게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의로움으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이다예수가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일에 본질이며 동일한 본질로 우리에게도 연속성을 가진다그렇게 얘기하는 거죠.

우리가 아직 죄인(罪人)이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우리의 범죄(犯罪)함을 위하여 죽으시고징벌과 심판을 받아야 될 모든 인류를 쌓아 안고없애버리는 셈이죠그리스도의 죽음 아래 모든 인류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새 인류가 등장하는 겁니다시간적으로역사적으로 예수로부터근데 그 이후에 이 결과와 운명과 최종 승리를 여기다 못박아 놓고서우리에게 시작과 과정을 주십니다.

이건 우리는 모를 방법입니다대단한 역설(逆說)이죠어떻게 끝이 시작 전에 오느냐역설이죠마치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어떤 노인네가 나와서 과거를 회상하며... 이제 이렇게 화면이 바뀌어 그가 어려서부터 이렇게 지나간 얘기를 하는 것 같이우리의 운명을우리라는 존재와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결정하고 각각에게 자기의 삶을 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상 우리는 뒤늦게 태어나고 우리가 늙고 하느님을 만나 배울 때까지의 인생을 자기의 선택과 여러 시험과 기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마는성경이 얘기하는 것은 결과를 예수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인류의 운명을 정했다는 것입니다이게 감사한 일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는 얼굴로 듣고 있습니다창세기 28장에 가시죠.

(창세28,10-15) 10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11 한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되었다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 간 뒤였다그는 그 곳에서 돌을 하나 주워 베게 삼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가 있고 그 층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13 야훼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야훼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네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이다나는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14 네 후손은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서 동서남북으로 널리 퍼질 것이다땅에 사는 모든 종족이 너와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다가 기어이 이리로 다시 데려 오리라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여기서 야곱은 아무 뭐가 없습니다대꾸도무슨 놀람도질문도 없습니다하느님이 이 야곱지난번 야곱을 예를 들 때 했던 거 같이 야곱이 자랑스럽지 않은 때기대하지 않은 때구하지 않은 때 등장을 하여 축복하는데 그 모든 이유는 뭐라고 그럽니까?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이겁니다그거를 역으로 갔다가 이해하면 아브라함도 그렇게 불렀다는 겁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떨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것하고 똑같이 아브라함에게 했고 그렇게 시작하신 것을 온 인류에게온 인류에게 허락하고 있습니다.

니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텐데니가 어디로 가든지 그걸 허락하니라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그게 예수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했던 것처럼예수 안에서 그게 성취되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로마서 5 1절입니다이게 무슨 말인지 봅시다.

 

(로마5,1)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로마3,21-22)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주신 하느님의 은총구원그 얘기가 이제 우리에게 현재입니다언제부터 현재였죠예수님 못 박히신 자리에서부터 현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믿어서 말고우리가 할 수 없었던 것 말고하느님 해서 시작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자하느님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복입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도자기를 깼습니다. 20억짜리라는 겁니다양쪽 아이 둘 다 도망갈 수 있는 만큼 가서어디 인적 없는 곳에서 떨고 있는 거죠어느 집에도 갈 수가 없는 거죠부모들이 찾고 있는 줄 모르죠한 이틀 밤 지나고 들어가면 좋습니다가서 맞고들어가는 수밖에 없구나그래서 부모와 화해해야 됩니다맞을 거 맞고 받을 복 받아야 됩니다지금 그런 현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외면하고는 마음의 평화는 없습니다자꾸 도망을 가는 것뿐입니다우리가 우리 인생 속에서 꼭 직면해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현되는 인간이 뭐냐인생이 뭐냐라는 문제에서 세상이 주는 것은 답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모두 공감하는 것입니다이기는 것은자신이 멋있어지는 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성령의 열매라고 나열되어 있는 성경의 약속들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온유와 성실과 인내와 절제들은 그것 자체가 보배롭고 귀한 것입니다세상은 이것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값싸게 여기고 세상은 넘어뜨려서 이기고 빼앗아서 가지려고 하죠세상은 성공이라 그러고 그것이 인생이라 그럽니다그렇지 않습니다우리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알게 되고그리고 고난을 받으면 더 알게 됩니다고난을 당하면 결국은 이 문제에 갑니다존재할 것인가말 것인가무슨 뜻이죠존재하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이렇게 무력하고 이렇게 기회가 없는데 존재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로마서 5 3,

 

(로마5,3-4)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를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의 운명우리의 승리우리의 완성을 방해할 수 없다그러니 그 환란과 고난 속에서 이 운명을 가지고 사는 현실을 살아라. 2절이죠.

(로마5,2)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멋진건요당구를 쳐보면 알아요질 줄을 몰라요지면 얼굴이 뻘개 갖고졌는데... 지면 이러는 거예요. “잘 치십니다한 수 배웠습니다.” 그러면 돼요우리가 왜 당구 하나를 지지 못하죠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니까승패 이외에 아무 가치도 발견할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다니죠. "건들지마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건들지 마." 뱀 대가리가 돼버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우리 스스로가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하느님 왜 이렇게 살게 하셨어요?" 그거요조금 전에 얘기한 거 같이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오니이것이 속한 성경의 답이 있죠고린도후서 4 5절입니다.

 

(2코린4,5-10) 5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6 '어둠에서 빛이 비쳐 오너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10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결정된 운명을승리를영광을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펼치라고 합니다그것은 책임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고 우리의 영광이기도 하다는 겁니다이 길을 살아보라는 것입니다걱정할 것 없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은 취소될 수 없는 역사적 과거입니다우리가 언제 믿고 언제 알게 되느냐는 것이 각각 다를지라도 결국 우리가 예수를 믿고 확인하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하느님이 나를 놓아두지 않았다를 확인하는 것 아닙니까그렇죠.

하느님이 우리가 믿을지 안 믿을지 볼라고 태어나게 했다구요아 그러면 안돼요하느님을 얕보시는 거예요우리가 믿으면 끝날믿으면 그것이 다인 걸 하려면 이렇게 끌 필요가 없죠하느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와 어떤 충만을 구체화하고 계십니다하느님의 영광과 우리의 영광을 말이죠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성경에서 하느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냥 멋있게 사십시오사람이 멋있는 건 어려울 때 드러난다니까성경이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대라고세상은 할 수 없는 겁니다우리만 할 수 있는 겁니다폭력으로 폭력을 대응하고 힘으로 힘을 대응하면 누군가가 죽어야 일이 마무리됩니다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신을 믿으라고 하더냐?" 이런 표현이 우리 그리스도교계에 있습니다우리가 원하는 신()은 전지전능해서 날 편하게 해줘야죠내가 하고 싶은 걸 줘야죠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창조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이 시간 속에도 나타나서 시간이 역순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까요우리의 후회우리의 실패는 영원히 씻을 수 없고 만회할 수 없는 과거지만 그것이 무얼 만드는가는 다른 문제라니까요.

모든 훌륭한 사람은 재수생이다’. 그런 말 들어보셨어요지금 막 만들었으니까 처음일 거예요삼수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죠안 갔으면 감히 세상이 감당 못하지요그 열등감과 그 절망과 후회와 고뇌가 그 속에서 무얼 만들었겠습니까얼마나 깊은 걸 만들었겠습니까?

편안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봤습니까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생각을 하는 것은 자랑의 문제가 아니라외적 성과가 아니고 인격과 성품으로 드러나며 그것이 인격과 성품으로 가지고 있다면도전하는 구체적 현실 위협 앞에서 답을 해야 됩니다해결하라는 게 아닙니다그 풍상을 겪고 자리를 지켜야지요.

외면당하고 억울할 수 있으며그 일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어떤 그늘을 주고 어떤 보호를 주는 하느님의 손길로 서 있을 수 있는 자그것이 실력이죠가져서 만들지 않습니다하느님이 우리에게서 그걸 이루시며 그렇게 일하신답니다필리피서 2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한 기록은 매우 놀랍습니다이 놀라움을 잊지 마십시오.

(필리2,5-11)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아니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하느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우리의 자리까지 찾아 들어오시는 하느님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시는 하느님그 하느님에게 항복되어 있습니다하느님은 그 일을 이미 이루셨습니다그리고 우리 보고, '이제는인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바와 같이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현실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가져야 되고언제나 무흠해야 되고 하는 싸움 아닙니다도덕성에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능력을 넘어서는 일입니다하느님 앞에 어떤 관계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약속했고 이루었고 붙들어 지금 함께 하고 있느냐에 관한 일들입니다.

아주 어렵거든 예수를 생각하라” 라는 말은 예수님이 그걸 참은 걸 생각하라가 아닙니다그것이 영광으로 가는 길이었단다영광은 고난 속에서 빛이 난단다그것 없이 빛이 날 수는 없단다어떻게 할래?” 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우리는 지금의 우리 지위와 환경이 불만이세요예수님은 자동차도 없었는데보험도 안 들고다시 한번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가지는 현실적운명적승리와 영광을 기억하세요그래서 진지하게 인생을 살고 그 속에서 멋진 승리를 확인하세요.

 

기도합시다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어 그 약속하신 일을 이루고 있는지 우리는 고백하여 갖고 있습니다그리고 또 헤매고 있는 셈입니다하느님이 이미 주신 승리주신 행복영광자랑명예믿음으로 붙들어 안아 우리의 생애 속에 펼치는누리는자랑하는 복된 인생인 것 알게 하여 주소서감사하게 하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