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봉헌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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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2-02 | 조회수21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주님 성탄후 40일째 되는 2월2일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특히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습니다.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는 주님의 모습을 말라키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대로 오늘 봉헌 축일 미사전례 은총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그는 은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봉헌을 날로 새롭게 함으로 말그대로 봉헌의 기쁨을, 봉헌의 행복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 축일이자 수도자들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 모두의 봉헌 축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헌의 축복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절호의 날입니다. 세상에 봉헌보다 아름다운 말마디는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봉헌이란 말마디의 깊은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수 없는 말마디가 봉헌입니다.
봉헌의 깊이는 하느님의 깊이이며 봉헌은 믿는 이들의 모두이자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봉헌의 사랑, 봉헌의 기쁨, 봉헌의 행복, 봉헌의 축복, 봉헌의 아름다움, 봉헌의 자유, 봉헌의 평화등 봉헌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봉헌의 행복을 체험해보지 못하고 아까운 인생 헛되이 마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전하고 쓸쓸하겠는지요! 봉헌의 삶에서 저절로 솟아 나오는 주님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봉헌의 삶을 통해 존엄한 품위의 인간 존재임이 잘 드러납니다. 오늘 축성생활을 맞아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 아빠스의 담화문중 주목되는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요즘 나이 많은 수도자들이 수도회를 떠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수도회에 거의 없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중 큰 하나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수 없고, 수도회 안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봉헌을 새롭게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참으로 내 소중한 성소를 날마다 가꾸고 돌보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니 또한 영적훈련이요 영적전쟁에 속합니다. 한두번 봉헌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하느님 중심의 ‘봉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니 매일이 봉헌 축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봉헌의 절정은 죽음이요 언젠가의 갑작스런 거룩한 죽음의 봉헌이 아니라 하루하루 크고 작은 일상의 봉헌의 여정에 충실할 때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봉헌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봉헌 축일이되면 떠오르는 두편의 시가 있습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늘 주님이신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은 목마름과 배고픔이, 갈망과 열망이, 마르지 않는 봉헌의 샘이자, 지칠줄 모르는 성소의 원동력이 됩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어느 자매님이 살아 생전에 작은 꽃 한송이를 선물했을 때 드린 짧은 자작시도 잊지 못합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삶자체보다 더 좋은 봉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좋은 사람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듯이 날마다 사랑의 봉헌의 삶을 사는 분들이라면 하느님께는 그 삶자체로 최고의 봉헌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봉헌의 모범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던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요, 의롭고 독실하게 살면서 봉헌된 삶에 항구하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메온입니다. 또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도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던 한나 예언자였습니다.
우리가 끝기도때마다 바치는 참 아름다운 시메온의 노래는 정말 날마다 정성을 다해 바친다면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타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새삼 우리 베네딕도회 정주 영성이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바로 정주의 삶은 봉헌의 삶, 성화의 삶이요, 정주의 여정은 봉헌의 여정, 성화의 여정이요, 정주의 축복은 봉헌의 축복, 성화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정주의 삶, 봉헌의 삶, 성화의 삶이 깊어가면서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감으로 참나의 실현도 이뤄지겠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의 묘사처럼 봉헌의 축복은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믿는 이들의 자녀가 모두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봉헌의 축복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한결같이, 살아있는 그날까지, 날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참나의 실현을 이뤄주는 정주의 여정, 봉헌의 여정, 성화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합시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이 우리 봉헌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봉헌생활을 압축한, 늘 바쳐도 늘 새로운 제 좌우명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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