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생공부, 평생과제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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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2-24 | 조회수267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완전한 사람, 사랑이 되는 것-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시편119.1-2)
교황청 홈페이지를 열으니 사순시기를 맞이하여 교황청에 근무하는 고위성직자들을 위한 칸탈메사 추기경의 사순 첫 강론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35절을 바탕한 강론이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누구든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누구든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영어에서 직접 직역했습니다. 참 반갑고 은혜로운 복음입니다. 첫눈에 “나는 생명의 빵이다” 말마디를 보는 순간 “나는 사랑이다”가 말마디가 연상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그대로 “예수님은 사랑이시다”로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해전 연중피정때 “사랑이 되기(Becoming Love)”라는 주제도 생각났습니다. 날로 예수님을 닮아 사랑이 되어가는 존재론적 변화가 바로 우리의 평생공부요 평생과제입니다.
아직도 눈은 쌓였지만 곳곳에 녹아 흐르는 물이 완연한 봄이 시작됐음을 알립니다. 봄되면 맨먼저 마리아의 집 피정집 뜨락에 피어나는 영춘화(迎春花)를 어제 보니 참 반가웠습니다. 개나리보다 1-2주 빨리 피는 꽃으로 꽃말은 ‘희망’, ‘사랑하는 마음’으로 봄과도 잘 어울립니다. 겨울을 통과한 파스카의 꽃 영춘화입니다. 문득 오래전 써나눴던 “예수님은 봄이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 봄이 입맞춘 자리마다 환한 꽃들 피어나고 봄의 숨결 닿은 자리마다 푸른 싹 돋아난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1999.3
시공을 초월하여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감있게 와닿는 시입니다. 예수님은 봄입니다. 봄은 사랑입니다. 다시 사랑을 공부해야할 봄입니다. 하느님은 자연을 통해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평생공부가 사랑이요 평생과제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한 완전한 사람입니다. 사랑공부에는 영원한 초보자라는 자각하에 다시 봄과 더불어 시작해야할 사랑공부입니다.
우리의 연장되는 날들은 사랑하라 주어지는 선물의 시간들입니다. 살아 있을 때 사랑이지 죽으면 사랑도 못합니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아쉬움도 아마 사랑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허무나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밖엔 답이 없습니다. 사랑도 훈련입니다. 우보천리, 한걸음 한걸음 사랑을 선택하고 배워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19년전 반가운 자작시가 생각나 나눕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난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다 흘러간 것들에 마음 아파해 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쓸쓸해하지 말자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흘러간 사람은, 사랑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사람에, 사랑에, 시간에 충실할 때 구원이다 이게 영원한 현재를, 젊음을 사는 길이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늘 새롭게 만나는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요 힘이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사랑에 있다”-2005.3
그렇습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다시 시작하는 사랑공부, 사랑과제입니다. 제1독서 신명기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모세와 예수님은 참 좋은 짝을 이룹니다. 모세의 말씀을 구체화하는 예수님의 멋진 강론이 오늘 복음입니다. 뭇사람들의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구체적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참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명심하여 실천해야 할 평생과제가 평생공부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사랑공부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죽어야 끝나는 평생과제요 평생공부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닮아 완전한 사람이, 참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 수준은 이처럼 높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궁극의 목표입니다. 다산 어록의 한 말씀도 생각납니다.
“목적없이 공부하면 지식을 많이 쌓는다 해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이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펼칠 수 없고, 뜻이 없으면 학문을 성취할 수 없다.”
참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사랑공부요 평생 사랑을 배우는 여정에 충실할 때 사랑의 대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성적, 육체적 ‘에로스’ 사랑도 아니고, 친밀한 우정이나 배우자간의 상호사랑의 ‘필리아’ 사랑도 아니고, 대가가 없을 지라도 상대방의 유익을 깊이 배려하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싫어도 미워도 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 하느님다운 사랑, 아가페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는 주님의 오늘 멋진 복음 강론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랑의 완전성은 이런 실천적 사랑의 완전성입니다. 참으로 상생의 공평무사한 보편적이자 구체적 사랑입니다. 결코 애매모호한 낭만적 추상적 사랑이 아닙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윈윈(win-win)”의 상생(相生)의 사랑입니다. 원수나 박해자를 미워하고 저주하다보면 내가 먼저 다칩니다. 그러니 원수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사랑이요 박해자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약한듯 하나 참으로 적극적이고 강한 두려움 없는 용감한 사랑입니다.
사실 우리 눈에 원수요 박해자이지 그 나름의 깊은 사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무지의 악에 눈이 가려 있을 수도 있고 나름대로 깊은 상처가 있을지 모르는 치유받아야 할 무지의 환자일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무사(無私)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때 악은 무장해제되고 보복의 악순환의 유혹에서 벗어나 무지의 병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아가페 순수한 사랑은 결코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또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하는 끼리끼리의 유유상종의 배타적 닫힌 사랑이 아니라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햇빛같은 사랑이요 모두에게 내리는 봄비같은 사랑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인사하는 유유상종의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요 주님께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부단한 자기초월의 아가페 사랑을 통해 날로 사랑의 주님을 닮게 하십니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시편19,8).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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