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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괴력의 사나이 삼손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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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6 조회수167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지난 시간 성서 묵상 강의는 ‘율법과 십계명’을 다섯 번에 나누어서,

십계명 풀이와 또 신명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유대인의 법률에 대한 것을 살펴봤습니다.

3천 년 전 유대인들이 하느님 백성이라고 자부할 만큼 유대인들의 법률은 늘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에는 눈으로’라고 하는 보상의 율법, 또 다른 말로 동태복수법 역시 상대에게 당한 만큼만 복수하라는,

결국에는 사랑에 근거하고 정의에 근거한 법이었죠.

물론 이러한 동태복수법은 예수님에 의해서 깨집니다.

예수님은 당한 것만큼 보복하라는 얘기하지 않으시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오른뺨 맞으면 왼뺨도 대주고,

5리 가자는 사람한테 10리를 가주라는, 대단히 파라독스한 역설적인 사랑의 계명을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그 말을 듣던 유대인들은 참 많이 어리둥절했었을 겁니다.

 

오늘은 괴력의 사나이 삼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구약 권수가 좀 다르다는 건 아시죠?

천주교는 46권이고 개신교는 39권입니다.

구약 성경 46권 가운데서 일곱 번째 책이 바로 ‘판관기’라고 하는 책입니다.

 

이 ‘판관’이라고 하는 말은 ‘해방자’ 또는 ‘통치자’라고 히브리말로 해석이 됩니다.

‘판관기’라고도 했고 아주 예전에는 ‘사사기(士師記)’라고도 했었습니다.

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적의 침략에서 해방시킨 공로로 통치자로 추대된 자를 판관이라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판관(判官)이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로 표현되었을까?

차라리 통치자 또는 해방자라고 부를 것이지 왜 판관이라고 얘기했을까?

왕이 될 자격이 없었나?

왜냐하면 판관들을 보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거나  다른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어떻게 보면 왕의 노릇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왕’이라는 칭호가 붙지 않고 그냥 판관이라고 하는 칭호가 붙은 겁니다.

가만히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통치자라 하면 분명히 왕이 될 텐데, 판관은 왕같이 세습이 아닌 일대에 한했던 겁니다.

왕이나 통치자라 한다면 왕이 죽으면 그의 아들 왕자가 왕이 됩니다.

그렇지만 판관은 왕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었기 때문에 왕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판관기에는 13사람의 판관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들 그 13명의 판관 가운데서 몇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글쎄요. 아마 대부분 기드온, 그리고 삼손, 그 중간에 멜키체덱 정도일 겁니다.

기드온이라고 하는 판관은 성경에 보면 매우 신앙이 좋은 용사로

매사에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 문의하면서 싸운 것으로 나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기드온을 왕으로 모시려고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고 애원했을 만큼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충성했고 또 복종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드온은 왕이 되라고 하는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이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기드온은 자기가 통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죠.

그렇지만 기드온이 판관으로 있던 40년 동안은 유대는 태평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기드온이 나라를 지켰던 겁니다.

아무튼 성경에는 기드온에 대해 아주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기드온 판관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드온 협회’라고 하는 세계적인 모임이 있죠.

그 기드온 협회에서 하는 가장 큰 일이 뭔지 아십니까?

한국 호텔이든 외국에 있는 호텔이든 호텔에 들어가면 대개 성서가 각 방에 비치되어 있죠.

바로 이것이 기드온 협회 사람들이 기증한 겁니다.

이 모임은 학교 학생이나 병원 환자들, 교도소 죄수들에게 성경을 기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드온이 바로 구약 성경 13명의 판관 가운데서 가장 신앙심이 깊고 겸손했던,

그리고 4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외세를 막아낸 용맹하기도 했던,

또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판관이기 때문에 기드온 협회에서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에 ‘삼손회’라고 하는 모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없을 겁니다.

판관 삼손 이야기를 사실 처음 접하면 무척 재밌기는 한데,

왜 이렇게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 못된 자의 생애가 거룩한 성경에 끼었을까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됐습니다.

성서를 갖고 계신 여러분들은 판관기 중에서도 삼손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삼손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셨는지 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삼손에 대해 성경에 나와 있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삼손이 출생할 무렵 이스라엘은 다시 야훼 목전에서 악을 행한 벌 때문에

40년 동안을 블레셋인(필리스티아인)들에게 노예로 속해 있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는 마노아라 불렸고 그의 아내는 성서의 표현대로 하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돌계집이었습니다.

성서에는 마노아의 아내가 잉태한 적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아기가 없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으로 무정하고 매정한 인간들이 있어서, 아이가 없는 것이 마치 그 여자가 무슨 핸디캡이 있는 것처럼,

몸에 병이 있어서 없는 것처럼, 아니면 죄가 많아 아기가 없는 것처럼 멸시하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정말 몸이 약하기 때문에 부부가 상의해서 약한 몸을 위해서

또 남편의 충분한 배려 때문에 의지적으로 절제하면서 아이를 안 갖는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아이를 열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석녀라 하고 비웃는다면 그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말이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삼손의 어머니도 이런 멸시를 분명히 받았을 겁니다.

그러던 중 이 여인에게 야훼의 사자가 나타나 말합니다.

13장 3절, 5절에 나오죠.

‘보아라. 너는 아기를 낳아보지 못한 돌계집이지만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임신하여 아들을 낳거든 그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다.

그 아이가 비로소 이스라엘을 불레셋 사람들 손에서 건져낼 것이다.’

이렇게 야훼 사자에게 말을 전해 듣고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렇게 야외 사자에게 말을 듣고 남편에게 얘기를 전합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 마노아는 야훼에게 묻습니다.

‘내 아내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져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가 낳을 아이에게 우리 부모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소서.’

이렇게 절실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소서.’

아마 자식을 가진 어버이라면 이 마노아의 기도가 가슴을 울릴 겁니다.

야훼의 사자는 이같이 대답합니다.

‘내가 네 아내에게 이미 일러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야 한다. 포도나무에 열리는 것을 먹으면 안 된다.

포도주와 소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일절 먹지 말라. 그리하여 내가 네 아내에게 일러준 이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사자가 일러준 대로 그대로 다 지킵니다.

그래서 정말 빌고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가 바로 놀라운 힘을 가진 놀라운 역사로 이름을 떨친 삼손입니다.

 

장성한 삼손은 불레셋(필리스티아) 여인에게 한눈에 반합니다.

블레셋은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민족이었죠.

나지르인을 괴롭히던 적대국의 여인에게 빠집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말하되 이렇게 얘기하죠.

‘제가 딤나에 갔다가 불레셋 처녀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처녀한테 장가들고 싶은데 얻어주십시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러지 못한다고 합니다.

‘네 일족이나 네 겨레 가운데는 여자가 없어서 할례도 받지 않은 불레셋 색시를 얻으려느냐?’

그래도 삼손은 아버지를 조릅니다.

‘그 여자가 좋은 걸 어떻게 합니까? 그 색시를 얻게 해주십시오.’

삼손은 이 블레셋 여인과 간절히 결혼하고 싶었던 겁니다.

 

도대체 삼손은 이 여자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빠졌을까?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는 여자분들이 많겠지만 또 남자분들도 들으실 겁니다.

대체로 사나이들이란 여자의 미모에 빠지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든가 미인이라는 점만 보고 그 여성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다분히 있죠.

파티장에서 뛰어난 미인이 있으면 남성들의 눈은 힐긋힐긋, 그 여인에게만 쏠립니다.

쏠림뿐만이 아니고 쓸데없이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넵니다.

아무리 그 미인 곁에 정말 착하고 인성 올곧은 아가씨가 있어도 그 아가씨가 아름답지 않으면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 얘기입니다.

보기만 해서는 성격을 알 수 없으니, 무리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남자들의 눈은 미녀에 대해 편중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혹시 들으신 분 가운데서 ‘그럼 신부님도 예쁜 여자한테 눈이 쏠립니까?’하고 물으실 수 있는데,

저는 대답 안 하겠습니다.

제 눈에는 세상 모든 여자가 다 이쁩니다. 그리고 다 미인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제 마음에는 차별하는 경향이 없습니다.

미인 편중 현상이 없습니다.

안 믿으시는 분도 있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녀 편중으로 역사에 호되게 아픔을 당한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렇지만 아직도 그 버릇은 바로잡히지 못합니다.

아마도 영원히 남자들에게 있어 미녀에 대한 편중 버릇은 고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듭니다.

남성분들, 이런 얘기 듣고 언짢아하거나 기분 나빠하진 마십시오.

이쁜 여자한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삼손도 미녀에게 마음을 사로잡혀서 무서운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 첫 여인이 바로 블레셋 여자였던 겁니다.

이방 여인을 데려오다니 당치도 않다고 부모들은 반대하였지만, 삼손은 듣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여자의 집에서 혼인 잔치를 갖습니다.

거기에는 블레셋인 30명이 초청되었죠.

삼손은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겁니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성경을 읽지 않고는 풀 수 있는 분이 아마 없을 겁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힘센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수수께끼의 내용입니다.

‘잔치가 계속되는 이레 동안 생각해서 맞혀보게. 알아내기만 하면 내가 모시옷 서른 벌과 예복 서른 벌을 내지.

그러나 알아내지 못하면 자네들이 나에게 모시옷 서른 벌과 예복 서른 벌을 내야 하네.’

그들은 좋다고 하면서 수수께끼를 말해 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인들은 3일 동안 생각을 아무리 해도 수수께끼를 풀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색시에게 뭐라 그랬느냐?

‘네 신랑을 꾀어 그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서 알려다오. 그렇지 않으면 네 일족을 불에 태워 죽이겠다.

네가 우리를 초대해 놓고는 홀랑 벗길 셈이냐?’

이렇게 협박합니다.

새색시는 삼손에게서 해답을 들으려 했지만, 삼손은 답을 주질 않았죠.

그러나 그녀가 이레 동안 울고 조르는 바람에, 7일 되던 날 아내에게 답을 알려줍니다.

 

수수께끼에 대한 답의 내용은 그거였죠.

삼손이 새색시 집에 장가오기 전에 사자 한 마리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은 사자 곁을 지나는데 사자의 몸에 꿀이 있었죠.

그래서 그는 그 꿀을 긁어모아 먹은 일이 있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답이었죠.

 

이 이야기를 새색시에게서 들은 사람들은 ‘무엇이 꿀보다 더 달며 무엇이 사자보다 더 강하랴?’ 이런 정답을 내놓게 됩니다.

삼손은 즉시 알아챘죠.

아! 내 색시가 답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이놈들이 풀 수 있었다.

하여튼 답은 맞췄기 때문에 약속한 대로 그 성읍에 다른 사람 30명을 죽이고 옷을 빼앗아

잔치 손님 30명에게 약속대로 예복을 줍니다.

그리고 몹시 화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죠.

 

그 후 얼마 후에 마음이 안정된 삼손은 염소 새끼를 선물로 들고 아내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장인이 그를 집 안에 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손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자네가 내 딸을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준 것 때문에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 딸을 들러리 섰던 사람에게 주었네.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원래 네 처보다 더 예쁘지 않나?’

그러면서 여동생을 대신 아내로 삼으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합니다.

삼손은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올라서 300마리의 여우를 붙들어 두 마리씩 꼬리를 비끄러매고서는

그 두 꼬리 사이에 홰를 하나씩 매달았다. 그리고 그 홰에 불을 붙여 밭으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곡식 가리뿐 아니라, 베지 않은 곡식과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까지 다 태워버리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새색시 집에 방화합니다.

그것을 본 삼손은 재차 노하여 많은 블레셋인들을 쳐 죽입니다.

 

삼손의 이러한 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죠.

왜냐면 불레셋들이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손의 일로 무슨 화가 미치지 않을까 새파랗게 질렸던 겁니다.

사실 삼손은 그것을 100번 알고 있으면서 기회만 있으면 블레셋의 제압에서 제 나라를 해방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죠.

말하자면 삼손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하나의 저항이었습니다.

삼손이 불레셋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아마 삼손의 마음속에는 불레셋인들에게 트집을 잡으려는 수단으로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도 삼손의 결혼은 틈을 타서 불레셋 사람을 치려 하였음이라는 기록도 나와 있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난리가 나니 삼손 한 사람을 유대인들 3천 명이 포위하고 그를 결박하여 불레셋인에게 내어주기로 합니다.

이때 삼손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그렇다면 당신들이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해 주시오.’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러지. 우리는 자네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네를 묶어서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는 새로 꼰 밧줄 둘로 삼손을 묶고 그 동굴에서 데리고 나왔다.

이렇게 새 줄로 결박돼서 불레셋 손에 넘겨집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결박된 삼손을 보자 환성을 지르며 덤벼듭니다.

그때 야훼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해 그를 결박한 줄이 마치 불탄 삼처럼 되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아무런 무기 없이 빈손이었지만, 나귀 턱뼈를 주워 휘둘러 1천 명을 쳐 죽였다 나옵니다.

나귀의 턱뼈로 1천 명을 쳐 죽였다는 얘기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튼 황당한 얘기죠.

한두 명도 아니고, 그것도 무슨 미사일을 쏴서 죽인 것도 아니고, 나귀에 턱뼈를 가지고서.

뭐, 그러니까 삼손이라고 그랬겠죠, 힘이 세니까.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 삼손은 가자라는 곳에 갑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기생을 보고 또 그에게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창녀한테 반한 겁니다.

삼손이 가자에 들어왔다는 기별을 받고 가자 사람들은 난리가 납니다.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있었죠.

아침에 삼손을 죽이려고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삼손은 적의 움직임을 알고 한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을 두 문설주와 잡고 빗장째 빼서 어깨에 메고

산꼭대기까지 버젓이 날라다 놓았습니다.

아마 그때 문 옆에 매복하고 있었던 자들은 떨어져서 죽었거나 다치고 도망쳤을 겁니다.

 

아무튼 삼손은 가는 데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저지릅니다.

그것도 여자 때문에.

그는 이런 난리 뒤에 소렉 골짜기 어느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그 여인이 유명한 들릴라입니다.

한국의 조영남 씨가 불렀던 노래 가운데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는 조금 발음이 틀리고요.

들릴라가 맞습니다.

소랙 골짜기에 있었던 들릴라라는 기생을 알게 됩니다.

들릴라도 블레셋 여자였죠

이 여인도 어지간히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삼손은 그만 이 여자에게 풍덩 빠집니다.

불레셋의 추장들이 살며시 들릴라에게 와서 이렇게 꼬십니다.

‘그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삼손을 이겨 결박하여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봐라.

그러면 우리가 저마다 너에게 은 천백 세켈씩 주겠다.’

이 돈은 지금으로 아마 수억이 되는 큰돈이었을 겁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금액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무리가 아닐 겁니다.

돈에 움직였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들릴라도 역시 불레셋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적대관계의 삼손을 당연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여튼 돈도 탐이 나고 비밀을 알아내고도 싶고, 들릴라는 베갯머리에서 삼손에게 묻죠.

‘당신의 그 위대한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가르쳐 주시오.’ 달콤하게 졸라댑니다.

삼손은 그전 어느 한 여인에게 수수께끼 답을 알려줬다가 당했던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엉터리로 대답해 줍니다.

‘마르지 않은 싱싱한 줄 일곱 개로 묶으면, 내가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된다오.’

그 말을 듣고 기생은 삼손을 그렇게 묶습니다.

그리고 불레셋 사람들을 내실에 숨겨놓고 삼손에게 불레셋 사람이 당신 잡으러 왔다고 하죠.

삼손은 벌떡 일어나면서 그를 묶었던 줄을 불탄 삼시를 끊는 것처럼 아무 힘도 안 들이고 끊어버렸죠.

이렇게 삼손이 거짓으로 답을 알려준 것을 알고 또 이 여인은 뭐라고 그럽니까?

‘당신은 나를 놀렸군요. 거짓말을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으면 되는지 저한테만은 알려주셔도 되지 않아요?’

이렇게 아양을 떱니다.

그래서 삼손은 또 뭐라고 그럽니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밧줄로 탄탄히 묶으면 나도 맥이 빠져 여느 사람처럼 되지.’

그래서 들릴라는 새 밧줄을 가져다가 삼손을 묶고는 또 소리칩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어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삼손은 자기를 묶은 밧줄을 실오라기 툭툭 끊어버리듯이 끊어버립니다.

이 들릴라라는 여인도 참 어지간한 여자입니다.

두 번이나 그 힘의 비밀을 삼손이 안 가르쳐줬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세 번째 또 삼손에게 진실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댑니다.

삼손은 이번에도 또 정답을 안 가르쳐주죠. 뭐라고 그럽니까?

‘내 머리 일곱 가닥을 씨줄로 엮어 말뚝에 매어 놓으면 나도 맥이 빠져 여느 사람처럼 돼지.’

그래서 들릴라는 그를 잠들게 하고 머리 일곱 가닥을 씨줄로 엮어 말뚝에 매고는 외쳤다.

‘여보세요. 불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어요.’

삼손이 눈을 뜨고 일어나자. 말뚝이 머리채에 감긴 채 뽑혔다.

삼손이 거짓말을 또 하는 것을 알고 들릴라는 또다시 집요하게 매달립니다.

당신은 나에게 도무지 마음이 없군요. 그러면서 나를 사랑한다고요?

‘당신은 나에게 도무지 마음이 없군요. 그러면서 나를 사랑한다고요? 벌써 나를 세 번이나 놀리셨어요.

당신의 그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저한테마저 숨기시다니!’

날이면 날마다 악착같이 졸라대는 바람에 삼손은 귀찮아 죽을 지경이 됐죠.

그래서 삼손은 마침내 속을 다 털어놓고 맙니다.

‘나는 모태로부터 하느님께 바친 나지르인이야. 그래서 내 머리에는 면도칼이 닿아본 적이 없다.

내 머리만 깎으면, 나도 힘을 잃고 맥이 빠져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이 되지.’

이제 드디어 정답을 알려준 겁니다.

머리카락에서 힘의 근원이 있다는 거였죠.

삼손은 여자에게 자기 비밀을 털어놓았던 겁니다.

 

여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삼손이 여자에게 빠졌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이나 자기의 비밀을 알려고 했었다면 이렇게 얘기했어야겠죠.

‘네가 내 목숨을 불레셋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세 번이나 나를 묶어 머리카락으로 베를 짜지 않았느냐?

이렇게 독살스러운 계집에게 내가 참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렇게 추궁하고 멀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삼손은 그 여인에게 빠져 있었던 겁니다.

삼손은 이 여자의 미색에 완전히 빠져 있었던 겁니다.

설마 들릴라의 마음씨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죠?

들릴라가 ‘그럼 돌아가세요. 헤어집시다.’

쌀쌀맞아질 것이 겁이 났던 겁니다.

이해되시죠?

요번에도 내가 거짓말을 하면 이 여자가 나를 밀어내겠구나.

그것이 겁이 났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의 비밀을 얘기합니다.

남자는 여자들의 마음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모를 사랑하기가 쉽습니다.

술집에서는 팁을 아끼지 않으면서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아내에게는 옷 한 벌 사주기를 아까워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보통 여자라면 추장들이 제시한 수억 원의 돈에 눈이 어두워 삼손의 비밀을 캐려고 했어도,

죽을 지경으로 괴로워하는 삼손을 본다면 그의 사랑을 깨달아서 감동될 법도 한데,

그리고 ’제가 돈 때문에 그 비밀을 캐려고 했던 겁니다. 제가 나빴습니다. 앞으로는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라고

삼손에게 이야기할 만도 한데, 들릴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면 삼손의 비밀을 알았다고 해도 분명 덮어두었을 겁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남성의 진실을 느껴본 적이 없는 냉정하고 탐욕스러운 여자였던 겁니다.

드디어 그녀는 삼손을 무릎 위에 잠재우고 그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립니다.

삼손의 힘은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삼손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되었고, 무참하게도 두 눈이 뽑히고 투옥됩니다.

 

이때 삼손은 대체 들릴라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자기를 그리 좋아하는 남자의 비밀을 팔아 얻은 돈은 들릴라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진실을 쏟은 사랑을 받았으면서 다시 그 사랑을 주어야 할 것을 인간들은 모르고 삽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죠.

우리는 얼마나 사람에게 배반당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보다 배반하고 삽니까?

가슴에 손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사랑 없는 것이 마치 들릴라를 닮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배반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 역시 큰소리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눈이 뽑혀 옥에 갇힌 삼손은 매일 맷돌질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과 함께 머리털도 자라나고 있었죠.

불레셋 사람들이 그의 우상 다곤에게 큰제사를 올릴 무렵 삼손의 머리는 그런대로 자랐죠.

머리가 한 달 동안에 1cm가 자란다고 하니, 예전대로 되는데 적어도 1년은 걸렸을 겁니다.

이 1년 동안 눈알이 빠진 삼손은 옥에서 맷돌을 돌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들릴라의 미모에 매혹되어 자기 힘의 출처를 밝힌 어리석음을 아프도록 뉘우쳤을 겁니다.

자기 힘의 출처를 밝혔다는 것은 야훼께 받은 나지르인으로서의 사명을 여자에게 넘겨버린 것과 다름없는

불신의 죄를 지었던 겁니다.

하느님은 은혜를 짓밟아 버린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나지르인인 삼손이 여색에 빠져 야훼께서 주신 힘을 상실해 버린 것은 얼마나 큰 불신앙의 소산이겠습니까?

 

신앙은 개인의 것입니다.

아무리 삼손의 부모에게 큰 신앙이 있었다 하여도, 아들 삼손에게 그대로 물려주지는 못하는 겁니다.

삼손은 자기의 힘은 하느님께서 부여하셨다는 것을 망각하고 오만해졌고, 제멋대로 믿음 없는 타락의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까딱하면 하느님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무엇이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순탄할 때는 교만해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됩니다.

삼손은 양쪽 눈알이 뽑히고 비로소 보아야 할 것이 뚜렷하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즉 불신앙의 자기 모습과 하느님을 보게 된 것은 두 눈이 뽑힌 이후였습니다.

 

불레셋인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섬기는 그날, 불레셋 백성들은 우상 다곤의 큰 제사에 삼손을 불러내고

자기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성서의 재주란 어떤 재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손은 한마디로 수치를 당한 겁니다.

삼손은 그때 이 집을 버틴 두 기둥에 의지하게 해달라고 자기 손을 붙잡고 인도해 주는 소년에게 부탁합니다.

신전 안에는 사람들이 넘쳐흘렀고, 옥상에서도 3천여 명의 남녀가 삼손이 당하는 수치를 구경하고 있었죠.

이때 삼손은 야훼께 부르짖습니다.

‘주 야훼여, 한 번만 더 저를 기억해 주시고 힘을 주시어 제 두 눈을 뽑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단번에 복수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삼손은 그 건물 중심에 있는 큰 두 기둥을 두 손으로 껴안습니다.

그는 자기도 불레셋 사람과 함께 죽으려고 온 힘을 다해 기둥을 끌어당깁니다.

과연 그 큰 기둥도 삼손의 괴력에 의하여 무너졌고 건물은 박살이 납니다.

불레셋 군주와 군중들은 순식간에 깔려서 죽습니다.

이렇게 해서 삼손은 불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어갔습니다.

 

참 하느님은 이상한 분이시지요?

이다지도 타락하였고, 결점투성이의 삼손을 들어 올려 유대국을 불레셋인들에게서 해방시키시는 겁니다.

우리도 결점투성이의 인간이지만 하느님이 들어 쓰고자 하실 때에는 많은 결점을 덮어주시고 써주신다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이 사시면서 병석에 누워서 기도해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하느님에게 기도할 때, ‘제 병을 고쳐주세요.’라는 기도보다는 ‘

저를 다시 써 주세요.’라는 기도를 더 많이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고쳐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저를 써주세요.’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기도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내 인생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하느님에게 쓰이는 인생이 되길 우리들은 하느님에게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 병을 고쳐주세요’라는 기도보다 ‘저를 써주세요’라는 기도가

훨씬 더 하느님의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강한 기도라고 하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삼손은 사람들에게 무섭고 놀라운 힘의 사나이라는 찬탄을 받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삼손은 힘이 없는 무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 하느님의 힘이 함께 할 때만 힘이 생겼던 것이기 때문에, 머리털이 깎인 그 순간에 힘을 잃은 무력한 삼손이 되었던 겁니다.

무력한 삼손이 본래의 삼손입니다.

힘없는 삼손이 바로 인간적인 삼손입니다.

그러나 무력해지고 소경이 되었어도 깊이 뉘우치면 하느님은 불러주시고 다시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삼손에게는 한 사람의 하인도 없었습니다.

남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1, 2천 명을 쓰러뜨릴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하인 노릇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망나니였는지도 모릅니다.

곁에서 삼손을 충고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무리 강한 힘의 사나이였지만 쓸쓸한 인생이었다고 저는 생각됩니다.

친구와의 사귐이 없는 신앙은 모든 것을 잃기 쉽다는 것을, 삼손은 또 한 수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판관기의 삼손을 처음 읽었을 때, 왜 이런 것이 성서에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었습니다.

그러나 판관기는 잠자는 신앙을 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고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삼손의 이야기도 역시 뜻깊은 장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들, 원래 삼손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서 하려고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50분가량 긴 강론을 하면서, 한 번의 강의로 끝맺음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삼손 이야기가 나오는 판관기 꼭 읽어보시도록 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롯기를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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