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5주일 나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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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4-28 | 조회수25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부활 제5주일 나해] 요한 15,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 어머니께서 저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놀지 말고 공부 좀 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그 땐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자꾸 놀 생각만 하는 철 없는 아들에게 하시는 ‘잔소리’ 정도로만 여겼지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남 좋은 일’로 여기는 모습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해 대신 공부를 해 주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나중에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 공부인데, 그놈의 공부 때문에 자꾸 부모님께 짜증을 내고 당연한듯 대가를 요구하며 수동적으로 학업에 임하는 모습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공부하여 학업에 진전을 이루면, 결국 거기서 오는 좋은 점은 자신이 누리는 것이지요.
그런 점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먼저, 자기가 더 많이 사랑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다 퍼주다보면 결국엔 내 안에 아무 것도 남는 것 없이 공허해질거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을 하면 오히려 내가 그 사랑으로, 그 힘 덕분에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차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그런 참되고 완전한 사랑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만 나옵니다. 사람에 기대고 의지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맺고 그분 사랑 안에 깊이 머물러야, 참된 사랑을 할 힘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 안에, 당신께서 하느님과 맺고 계신 사랑의 친교 안에 머무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작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가지치기’입니다. 나무는 가지에 생명수인 수액을 공급하고 가지는 그 수액을 받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그 가지인 우리 사이의 관계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수액을 충분히 주시는 분이지만 결코 낭비는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수액을 열매 맺는데에 써야지,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데에 혹은 잔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늘리는데에 낭비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런식으로 열매를 위해 써야 할 시간과 노력을 엉뚱한데다가 쓰면 수확철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그 겨울에 하느님께서 심판의 가위로 우리를 주님 사랑으로부터 잘라내 버리실 겁니다.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는 참된 농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은총이 무의미하게 낭비되는걸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속 주님 곁에 붙어있고 싶다면, 내 뜻대로 마구 자라는 욕심과 고집이라는 잔가지를 잘라주어야 합니다. 틈만 나면 나를 크게 부풀리고 꾸미려 드는 교만이라는 잎파리들을 떨궈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은총의 양분을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에 온전히 사용하며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의 가지치기를 마쳤다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주님 안에 머무르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안에 진정으로 머무르면, 당신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십니다. 참된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속한 그분의 진정한 가지가 되려면, 주님께 물리적으로 붙어있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단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저 말로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낸다고 해서 주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게 아니지요.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모든 일에 앞서 그분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서 선택의 순간마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주님은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를 먼저 생각하며 그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올바르게 식별할 참된 지혜를 주십니다. 결국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이 나를 통해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도록 내 안에 가득한 욕심과 자아를 비워내는 일입니다. 또한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 삶의 주도권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바오로 사도가 그랬듯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상태, 주님께서 누리시는 참된 생명과 행복을 그분과 함께 누리는 상태가 됩니다. 주님과 내가 ‘한 포도나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열매에 가지가 달린다고 해서 가지가 그 열매를 만드는게 아닙니다. 가지는 나무가 내어주는 수액을 나무가 만들어준 꽃눈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 열매는 나무가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살면서 큰 성공을 이룬다고 해서, 풍성한 결실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을 마치 내 능력으로 이룬 것인양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착각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루카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가 많은 소출을 얻은 것이 자기 능력 때문이라 착각하여 그것을 자기 혼자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 더 큰 창고를 지으려 드는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그러니 우리는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사랑에 감사하며 거기서 얻은 좋은 것들을 그분 뜻에 맞는 일에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입니다. 양분을 제 안에 저장하는건 가지의 역할이 아닙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받은 수액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과 사랑에 감사를 더하여 기꺼이 이웃에게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라는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억울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는 족족 다 내어주고 나면 나한테는 뭐가 남느냐는 것입니다. 열심히 해봐야 ‘인건비’도 안 남는 게 신앙생활이라면 그런 일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이신 주님의 가지로 사는 일은,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은 결코 ‘남 좋은 일’만 시키는게 아닙니다. 내가 포도나무의 참된 가지가 되면, 다시 말해 주님과 내가 ‘하나의 나무’가 되면, 그분께서 바라시는 뜻이 내가 바라는 뜻과 같아집니다.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 청하는 것들을 그분께서는 그대로 이루어 주시지요. 내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언제나 100% 열매 맺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런 영적인 성공 체험이 나를 훌쩍 자라게 만듭니다. 그렇게 나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니 주님 안에 머무르는 참된 가지가 되는 일은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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