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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성 십자가 현양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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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14 조회수81 추천수2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9/14) :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성 십자가 현양 대축일

* 제1독서 : 민수 21, 4ㄴ-9

* 복음 : 요한 3, 13-17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수녀님들(올리베따노회)의 날입니다. 수녀님들께 있어서 ‘십자가’‘스위스 캄 성 십자가 수녀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성적 모태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선 ‘죄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는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기보다 의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지는 일은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이 되고 맙니다. 부당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십자가를 피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용서해야 할 존재’이기에 앞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비록 죄가 없다할지라도,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죄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쓸 줄을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곡해 받고, 누명쓰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를 ‘위하여’ 자신이 뒤집어써 주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구원되기를 ‘위하여 자신을 건네 주는 일’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죽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일이요,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일이 아니라 물러나는 일입니다.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패배당하는 일이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이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게 당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는, 틀려서가 아니라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요, 힘 있으면서도 눌리는 일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곳’입니다. 그것을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요, 그가 구원되기를 희망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일이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그분을 향하여 자신을 바치는 봉헌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승리요, 구원이 됩니다. 곧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죽이고 진정으로 참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덧붙임>,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제 자신이 덧붙여 본다면, ‘십자가’는 ‘벌어지는 일을 수락하는 일’이라고 여겨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아니, 만들지 않은 일들이 마구 벌어져 다그쳐옵니다. 오히려 만들고 조작하고 계획했던 일들은 무색하리만큼 우리를 비켜갑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휩싸고 돕니다. 이제 그것들을 ‘사랑으로’ 마주하고 끌어안고 응답하는 일이 제게는 ‘십자가’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58장 7절에 나오는 ‘성소식별’의 기준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무력함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전능함이 됩니다. 낮아짐으로써 진정 높아지고, 패배이지만 사랑의 승리가 됩니다. 지면서도 쳐부수고, 승리의 깃발이 되고, 영광의 월계관이 됩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표상이요, 완전한 승리의 표상이요, 현양이며 영광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 삶을 전환시키는 혁명이 됩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 6,14)

오늘, ‘십자가’를 드높여 이 고귀한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아멘.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13)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 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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