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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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9-22 | 조회수6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24년 09월 22일 일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혜서에서는 의인들의 영혼이 불멸하며 하느님의 손안에서 평화를 누리리라고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늦게 작성된 지혜서는 내세에 대한 희망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혜서보다는 좀 더 이른 시기, 이스라엘에서 유다교가 외세의 박해를 받던 시대에 다니엘서와 마카베오기 같은 책들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나타납니다. 여러 해 전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내세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 뚜렷해지면서 순교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 누군가 “순교자들은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었더라도 순교를 하였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다니엘서 3장 17-18절에서 다니엘의 친구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불가마에서 구하여 내시지 않더라도 다른 신들을 섬기지는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장차 받을 영광과 상급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마저도 시작은 하느님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로마 8,32)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었기에]”(8,37) 박해와 칼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주신 분, 그 사랑에 우리도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오늘, 순교자들이 지녔던 큰 사랑과 용기를 본받으려 한다면 먼저 순교자들이 만났던 하느님을 우리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 우리의 사랑이 없다면, 다만 상급을 바랄 뿐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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