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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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22 | 조회수5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루카 19,45-48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신성(神性)”이 드러나는 특별한 공간이나 영역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신봉하는 ‘절대자’가 현존하며, 신자들이 그곳에서 절대자를 만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법당, 유다교에서는 회당, 원불교에서는 교당이 그런 곳에 해당하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전’이 그런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에서는 그런 곳을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개개인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당했던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공권력에 쫓겨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몰려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성당 마당에 천막을 치고, 현수막을 내걸고, 거기서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서슬 퍼런 기세로 시위대의 뒤를 쫓던 경찰병력들도 시위대가 성당 문 안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쫓지 않고 거기서 발길을 멈추곤 했는데, 그것이 ‘성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고 예우였습니다. 아무리 ‘공무집행’이라고 하더라도 신적인 존재가 머무르는 거룩한 공간을 군화발로 짓밟고 들어가 망가뜨리는 것은 ‘독재세력’에게도 영 찜찜한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목숨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더라도 끝까지 거룩하고 순수하게 지켜내야할 ‘생명의 도성’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세상의 오염과 훼손으로부터 성전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성전’을 대하는 태도는 신앙의 선조들에게 보여드리기에 참 부끄럽습니다. 성전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고 깊이 탄식하실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거룩하고 엄숙해야할 전례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저기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립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미사를 준비해야 할 그 시간에 성전 안에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신자분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예의와 에티켓 조차도 지켜지지 않아서 전례에 참여중인 이들의 마음에 분심을 일으키는 경우도 참 자주 보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성전 안에서, 그것도 미사 시간 중에 차, 다과, 껌 같은 음식물을 섭취하시기도 합니다. 어린이 미사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은 오히려 어린이들이 더 잘 지킵니다.
그런 태도로 외적인 성전을 대하는 사람들은, 내적인 성전인 자기의 몸과 영혼을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몸을 ‘기도의 집’으로 만들지는 못할망정, ‘강도들의 소굴’로 방치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은 항상 뒷전입니다. 일에 파묻혀 살면서,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 좋은 곳을 여행할 기회 등 뭔가 ‘건수’만 생기면,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 봉헌해야 할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마저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그러면서 ‘대송’을 바쳤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미사 참례 의무 한 번은 대송으로 ‘때울”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세상 것들에만 마음 쓰느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마음의 거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늘 주님께 겸손되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기도의 집’이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주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성전’인 우리들에게 맡겨진 소명이며, 우리가 그 소명을 다 할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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