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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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06:53 | 조회수2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2/2) : 주님봉헌 축일 * 제1독서 : 말라 3, 1-4 제2독서 : 히브 2, 14-18 * 복음 : 루카 2, 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 <오늘의 강론> 성탄을 지낸 지 벌써 40일이 지났습니다. 이날, 성모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시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모세의 이 율법규정을 지키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려고 굳이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바로 이날, 죽기를 결의하고 메시아를 기다렸던 한 노인과 밤낮으로 단식하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한 과부가 구세주를 뵈었습니다. 바로 이날을 기념하여, 원래는 성모 취결례축일로 지내오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에 “주님봉헌축일”로 개정하여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날을 1997년(1월 6일)에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축성생활의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교회 축성생활의 해’를 지내고 있는 축성생활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남장협 부설기관인 ‘축성생활 신학회’는 2015년 “봉헌 생활의 해”를 지낸 후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다시금 축성생활의 의미를 상기하고, 수도생활의 쇄신과 수도자의 정체성 확립과 수도 성소 확산을 위해 ‘한국교회 축성생활의 해’를 지낼 것을 건의했고, 이를 남장협과 여장연은 주교회의에 공식 요청했으며, 주교회의는 작년(2024년) 3월 춘계 정기총회에서 「교회헌장」 ‘인류의 빛’ 반포 60주년인 올해 11월 21일부터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60주년인 2025년 10월 28일까지 1년여 간 ‘한국 교회 축성생활의 해’를 지내도록 승인했습니다. “봉헌생활”이란 <교회법> 573조 제1항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는 신자들이 복음적 권고의 선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특별한 명의로 헌신하고 하느님 나라에 봉사함으로써, 애덕의 완성을 추구하고 교회 안에서 빛나는 표징이 되어, 천상적 영광을 예고하려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고정된 생활양식이다.”
이는 여섯 가지 의미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는 신자들”이라는 표현은, 곧 봉헌생활이 성령의 감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인 <봉헌생활>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봉헌생활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당신 교회에 주신 은혜이다.”(제1항)
<둘째>, “복음적 권고의 선서를 통하여”, 곧 봉헌생활은 복음적 권고인 가난, 정결, 순명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는 삶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위의 문헌 <봉헌생활>에서는 “그리스도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헌된 삶”(제22항)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자기의 집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건설을,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 구원의 삶임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셋째>, “하느님 나라에 봉사함으로써, 애덕의 완성을 추구하고”라는 표현은, 곧 봉헌생활은 사랑의 완성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전력을 쏟는 삶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교황 요한 바오로 6세 반포한 “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인 <완전한 사랑>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을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이신 스승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 기원을 이끌어 온다.”(제1항)
결국, 봉헌생활은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아내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사랑의 완성을 이루었듯이, 봉헌의 삶 역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사랑의 삶임을 말해줍니다. <넷째>,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특별한 명의로 헌신하고”라는 표현으로, 봉헌생활의 축성은 세례에 의한 축성에 깊이 근거하며, 이 축성을 더 완전히 표현하는 특별한 축성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증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특수한 축성으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고, 세례의 축성으로 이루어진 근본적 봉헌을 더욱 완전히 실현시키고 있다.”(제4항)
<다섯째>, “교회 안에서 빛나는 표징이 되어, 천상적 영광을 예고하려고”라는 표현으로, 봉헌생활은 인간의 궁극적인 생활을 예표 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제44항)과 <봉헌생활>(제26항)에서는 봉헌은 “미래의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더 잘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봉헌생활은 교회 안에서 빛나는 표징이 되고, 천상적 영광을 예고해줍니다. <여섯째>,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고정된 생활양식이다”라는 표현을 통하여, 봉헌생활은 모든 것보다 우선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삶임을 말해줍니다. 곧 일시적 충동에 따라 사는 임시적인 삶이 아니라, 공적인 선서로 평생토록 지속되는 고정된 생활 형식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봉헌생활>에서는 “가없는 헌신”(104항)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봉헌축일”과 “축성생활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삶이 친정한 참 제물로 바쳐지는 삶이 되고, 주님의 축성을 충만하게 채워내는 삶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아멘.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7)
주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과부의 마음속 말을 들으시듯, 미처 말이 되지 않는 제 마음 헤아려 들어 주소서.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 면전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밤낮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에 감싸여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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