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회개(悔改)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지난 시절 지은 죄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고쳐먹음’입니다.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가슴도 치고,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가슴을 치는 행위도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죄나 악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느님께로 삶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도 회개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또 다른 측면의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라는 표현 안에는 ‘안다’ ‘인식한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려서, 삶에 여유가 없어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 미처 몰랐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역시 회개입니다. 칼라너 신부님의 표현에 따르면 회개란 우리가 지니고있는 지극히 협소한 인식 지평을 더 넓게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결국 회개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회개란 무엇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회개의 첫걸음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앎이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정말이지 중요한 노력이 하느님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 내 인생 여정을 동반하시는 주님,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 나를 당신 눈동자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주님, 내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 나의 고통을 보고 계시는 주님, 나의 작은 신음소리 조차 귀기울이시는 주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으면 다음 작업이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 앞에 나는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흙이요 먼지요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죄와 한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지닌 존재입니다. 왜? 우리 각자 내면에는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느님을 잘 알게 되면, 나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나란 존재는 그 어떤 다른 곳이 아닌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 그것이 지상 과제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 회개의 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측면의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좋은 마음에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고, 목 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음료 한 잔 건넸는데, 그것을 받아 먹고 마신 사람들이 예수님이시랍니다. 우리는 습관처런 병자 방문을 가고 교도소 면회를 갔는데. 거기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또 다른 예수님이시랍니다. 회개와 관련해서 요즘 시국 돌아가는 것을 묵상해보니, 정말이지 큰 회개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고 김치찌개를 맛나게 드시고 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입니다. 그는 죄중에서도 가장 큰 죄, 자신을 모르는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오늘 우리도 그런 죄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본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최악의 생활고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또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참담한 사태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고 가슴을 찢고 있는데, 무슨 세계 챔피언 먹은 것도 아닌데, 만면에 미소를 짓고 주먹을 불끈 쥐고, 정말이지 참담하고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그 가족, 주변에 죽치고 있는 하이에나 무리의 회개와 새 삶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슬픈 저녁 시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