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부활 제5주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아직 완전한 자녀가 된 게 아니다> 복음: 요한 13,31-33ㄱ.34-35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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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있었던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자기보다 더 어린 여동생에게 인간 다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떼보지 않아도 둘은 남매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둘이 그토록 사랑한다면 남매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면 우리가 공통으로 ‘아버지’라 부르는 분이 계시고 그분은 참사랑을 가르쳤을 것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왜 형제들이 그렇게 서로 사랑하게 될까요? 부모의 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피를 받으면 ‘양심’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게 됩니다.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는 동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본 포로를 석방해줍니다. 안중근은 도마라는 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래서 포로를 그냥 사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은 일본군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안중근 의사가 나가 있을 때 그의 동료들을 초토화해버린 것입니다. 영화에서 안중근 의사는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다른 동지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자르며 “오늘 우리들이 손가락을 끊어 맹세를 같이 지어 증거를 보인 다음,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기어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소.”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귓가에도 부모로부터 뿌려진 피가 이런 소리를 냅니다. 형제끼리는 서로 사랑하라고. 나의 목숨은 부모한테서 왔으니 나의 것이 아니라고. 이것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안중근 의사는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합니다. 배신하는 사람도 용서합니다. 그 용서하는 마음은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것처럼 아픕니다. 그러나 같은 나라 사람끼리는 서로 사랑하라고 죽어간 동지들의 피 값에 비하면 그 용서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형제가 서로 미워하면 더는 부모의 피가 그 형제들 안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그것으로 부모의 자녀의 지위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유튜브에 보니 누나가 다운증후군을 앓는 남동생을 위해 매일 기타를 치며 노래 불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의사는 다운증후군 동생이 말을 알아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노래를 좋아하고 가끔 노랫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누나는 동생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엄마!”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엄마는 태어나서 그런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동생이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것은 누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 안에서 부모의 피가 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라앉히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마치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것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자기 안에서 부모의 피가 끓어 양심을 찍어누르는 고통보다는 가벼웠던 것입니다.
가끔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요즘은 가장 크게는 정치 때문에 분열되는 것 같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서로 마음이 달랐어도 한 성직자를 중심으로 일치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추기경님이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과 맞설 때 가톨릭교회를 더욱 우러러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성직자를 먼저 용서할 수 없다면 형제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고, 그렇다면 어떻게 아버지의 피가 자신 안에서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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