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진실하고 정직하여라 “그리스도의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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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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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14 | 조회수42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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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4.연중 제10주간 토요일
2코린5,14-21 마태5,33-37
진실하고 정직하여라 “그리스도의 사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시편103,1)
기존 강론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기쓰듯, 매일의 내 삶의 역사를 기록하듯 쓰는 강론입니다. 새벽 교황청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반가운 말마디가 1면 톱기사에 올라있었습니다. 2025.11.16.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미리 발표된 “You are my hope; 당신은 나의 희망이십니다.”(시편71,5) 제목하의 담화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물론 주님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십니다.
어제 금요강론중 성 베네딕도의 묘사에서도 “그의 희망은 그리스도께 뿌리내리고 있다(His hpoe is rooted in Christ)” 라는 평범한 말마디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내릴 수록 독야청청 푸른솔같은 삶입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말씀도 희망에서 연원됨을 깨닫습니다.
“오늘 내가 당당한 까닭은 어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가 있다. 바로 소일(消日;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냄), 그럭저럭 한가롭게 보내는 세월이다.”
정말 하느님께 희망을 둔 영원한 현역의 구도자의 삶이라면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치열한 한결같은 삶일 것입니다. 분명 다산 선생님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제 어머니 마리아의 20주기 기일이기도 합니다. 선종 몇 달 전, 어머니의 죽음을 예감한듯 <어머니를 그리며> 쓴 사모곡(思母曲)이 생각나 일부 나눕니다.
“그 흔한 종교나 신앙없이도 한결같이 사셨던 어머니 거룩한 삶자체가 기도였고 신앙이셨다 이리저리 감정에 연약하게 흔들렸던 분이셨다면 그 험한 세상 세월에 다섯 남매 어떻게 키웠을 것인가
외롭다 거니 그립다 거니 감정 표현 없이도 따사로운 남편 사랑없이도 흔들림없이 꿋꿋이 가정을 지켜오신 어머니 은연중 막내인 나와 살고 싶어 하셨다 지금은 극도로 쇠약해 지셔서 온종일 방에 누워계신 어머니 정신은 여전히 맑으시고 마음도 고요하시다.”<2005.3. >
보이지 않은 영원하신 그분께 뿌리내린 희망이었기에 이처럼 한결같이 담담하고 평온하셨을 것입니다. 2005년 돌아가시던 다음해 불암산을 보며 쓴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라는 글도 생각납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봄마다 신록의 생명 가득한 산 꿈꾸는 산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세월도 비켜가나 보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은 산이다.”<2005.5. >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이런 산같은 삶입니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비켜가 그 마음은 영원한 신망애(信望愛)의 청춘입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삶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우리를 늘 새롭게 하며,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절이 되어 살게 합니다. 역설적으로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고전적 명품인생을 살게 합니다. 저절로 진실하고 정직한 삶입니다. 맹세의 무지와 만용, 교만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유명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로 시작하는 네 번째 대당명제입니다. 한마디로 ‘맹세하지 말라’는, ‘절대 진실하고 정직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참제자로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예루살렘을 두고도,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정말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사람이라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절대 무모하고 어리석게 맹세하지 않습니다. 절대 변명이나 핑계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쾌하게 통쾌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절대 진실하고 정직하라는 말씀입니다. 새삼 너 자신을 알라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동방영성에서 강조되는 ‘무지(ignorance)’에 반대되는 ‘자기인식(self-knowledge)’의 지혜와 겸손입니다. 숱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입니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도 있지만 정말 살아가면서 나이들어갈수록 ‘할말은 많아도 결코 해서는 안됨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 진실하고 정직한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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