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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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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14 조회수38 추천수2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6/14) :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 제1독서 : 2코린 5, 14-21

* 복음 마태 5, 33-37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네 번째 새로운 의로움’으로, ‘맹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흔히 우리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거나, 그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서 ‘맹세’라는 것을 합니다.

우리는 에사오가 성급한 ‘맹세’로 야곱에게 장자의 상속권을 팔아넘긴 이야기(창세 25,33), 헤로데의 경솔한 ‘맹세’로 한갓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이 목숨을 잃은 이야기(마르 6,17-19), 베드로가 추궁을 벗어나기 위해 맹세까지 하면서 스승을 모른다고 배신한 이야기(마르 14,71) 등을 압니다.

사실, <구약성경>에서는 야훼 하느님께서 맹세하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계약체결 때(신명 4,31;7,8), 약속 이행의 보장을 말씀하실 때(창세 22,16;26,3), 심판 예고 때(민수 14,21;아모 4,2;6,8),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실 때(에제 20,3;33,11)에 그러하십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대개는 “나는 살아있는 자로다”라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유일한 보장은 하느님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하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신명 6,13;10,20). 그리고 <레위기>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레위 19,12).

한편, 사람들끼리는 ‘맹세’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약속이나 결심이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을 보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법정의 심문에서나 예언자들의 예언에서 그 말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해 하느님을 보증자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법정에서 증언할 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이는 거짓 맹세인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가면서, 하찮은 일까지도 하느님을 끌어들여 자신의 목적을 위한 ‘이기적인 거짓 맹세’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피조물을 두고 맹세함으로써 우상숭배의 결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뿐만 아니라,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 5,34)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맹세’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자신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은 그 주인이 아니기에, 하느님이나 하느님 것을 두고 맹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자일 뿐, 스스로가 부르심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사람들일 뿐, 하느님의 뜻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인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응답하여 따르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해야 할 뿐입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정직함’(솔직함, 진실)이 요청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성실한 실행에 그 진실성의 여부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주님께 응답하고, 응답한 바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프랑스 푸아티에르의 성 힐라리우스는 말합니다.

“믿는 이에게는 ‘맹세’ 자체가 필요 없는 일입니다.” 아멘.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주님!

오늘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주인 행세하기를 멈추고, 당신 뜻에 응답하는 자 되게 하소서!

응답이 행동으로 진실 되게 하소서!

제 말과 행동이 참되게 하시고, “예” 할 것을 “아니요”라고 하지 않고,

“아니요” 할 것을 “예”라고 하지 않게 하소서.

제 자신이 진리인 양 내세우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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