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겸손을 알고 나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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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09 | 조회수1,94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사순 제3주간 토요일 (2002-03-09)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호세 6,1-6 복음 : 루가 18,9-14
[겸손을 알고 나니]
그때에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 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루가 18,9-14)
요 몇 년 사이 나는 그 누구에 대해서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뭘 하고 싶은 사람이고 꿈은 뭐지?
어느 때 기뻐하고 어느 때 흥분하고 어느 때 슬퍼하나, 또 어느 때 힘을 얻고 어느 때 풀이 죽나 등등 ‘참 나’에 대해 고민과 성찰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내 우월감은 열등감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진정한 겸손을 배운 듯하다.
겸손은 나를 무척 자유롭고 편하게 만들었다. 또 우열이 아니라 평등을, 독식이 아니라 개성과 다양성을, 혼자가 아니라 서로 돕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종종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때 가장 조심스러웠던 단어는 ‘겸손’이었고, ‘내 탓이오’와 ‘자신을 낮추자’였다.
내가 만난 대상이 주로 자기를 죽이고 죽이며 살아와서 자신을 낮추려야 더 낮출 것이 없는 그런 작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사회의 그늘에 머무르는 이들,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욕구가 꺾이고 좌절당한 이들,
그리고 자기는 칭찬받을 만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위축되어 있는 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존엄하고 훌륭한 사람들임을 믿는 것이었다.
그 무엇이든 헤쳐 나갈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고 나아가자는 ‘뽐내기’와 ‘자신을 높이자’는 다짐과 실천이었다.
이를 깨닫고 행동에 옮기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더 의지하고 풍성하게 체험하였다.
예수님 앞에서는 누구든 귀하고 평등한 존재이다.
세상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예수님보다 높을 수가 없고,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을 업신여길 수 없다.
이런 겸손함을 삶과 관계 속에서 깨친다면 예수님과 참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보다 높아지려 말게 하시고, 내 아래로는 그 누구도 낮추는 이가 없게 하소서.
장영예(가톨릭 파트너십 연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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