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발의 소중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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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28 | 조회수2,066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성주간 목요일 (2002-03-28)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이사 61,1-3ㄱ.6ㄱ.8ㄴ-9 독서 : 묵시 1,5-8 복음 : 루가 4,16-21
[발의 소중함]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한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 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으므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 13,1-15)
어릴 적에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면 늘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구멍난 양말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보는지 안 보는지는 모르지만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내 구멍난 양말만 보고 있는 것 같아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일부러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녔다. 특히 더울 때는 더 그랬다.
거룩한 성당에 들어가 슬쩍 슬리퍼를 벗고 성당 맨바닥에 구멍난 양말을 신은 발을 내려놓으면 시원할 뿐 아니라 졸음도 가시고 머리도 맑아지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내 몸을 지탱해 준 고마운 발. 이 발이 개운하면 몸도 함께 개운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발을 우습게 여겨 천시한다. 하여 맨발로 나서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가!
사막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밖에 나갔다 오거나 손님을 위해서는 반드시 발 씻을 물을 내놓았다.
예수께서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발을 씻어주신다. 발은 그 사람의 삶이다.
스승과 제자로서가 아니라 친구와 친구로서 깊은 구원사적 우정을 가지고’….
오늘 나는 예수님이 손수 씻어준 나의 발을, 아니 나의 삶을 만져본다. 그리고 그 낮음의 귀중함을 느껴본다.
문득 하루 종일 내가 걸어온 길들이 떠오르면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그분의 음성을 되새긴다.
윤영길 신부(광주대교구 곡성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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