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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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4-22 | 조회수1,853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부활 제4주간 월요일 (2002-04-22)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사도 11,1-18 복음 : 요한 10,11-18
[위하여!]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도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
(요한 10,11-18)
우리는 착한 목자처럼 남을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위한 삶’,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러나 어떤 것이 진짜 위하는 삶일까?
상대방의 어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위하는 삶일까?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는 것이 위하는 것일까?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위하는 것일까?
‘위한(for)’ 삶을 사신 예수님을 보면 그것은 ‘함께(with)’ 사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여러 해 동안 함께 사셨다.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셨다.
같이 먹고 자고, 같이 일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특히 삶의 애환을 한 몸처럼 겪으셨다. 제자들의 무지, 욕심, 정치적 야망, 배신 속에서도 예수님은 함께 사셨다.
오랫동안 함께함으로써 예수님은 위하는 삶이란 함께하는 것임을 교육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셨다.
우리는 누구나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 갈등과 불목 같은 슬프고 괴로운 일이 더욱 많은 것 같다.
그럴 때 싸움과 대결보다는 그 일을 함께 겪는 자세가 필요하다. 곧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부족하고, 허점과 단점투성이기에 서로 고치고 좋은 점을 배우려고 해야 한다.
나는 ‘위하여’ 있는 존재가 아니고 ‘함께하기’ 위하여 있다.
허우영 신부(광주대교구 선교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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