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제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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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2-07-14 | 조회수2,643 | 추천수31 | 반대(0) 신고 |
7월 15일 월요일, 성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오 10장 34절-11장 1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사제복>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사제복"과 관련한 기억이 생생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주임 신부님이 피정을 떠나셔서 한 본당 주일미사를 대신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미사가 끝나고 본당 원장 수녀님과 상의할 일이 좀 있어서 찾았더니 주임 신부님을 대신해서 돌아가는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수녀님이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하신지!!! 제가 옆에서 한참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르셨습니다. 모든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한편, 근황을 묻기도 하고 바쁘셨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저는 어정쩡한 자세로 수녀님 바로 옆에 서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제가 사제복을 입지 않고 우중충한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어깨를 툭 쳤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 아래에서 위까지 쫙 때깔나게 차려입은 신사 한 분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아! 자네구먼, 수녀님이 소개하겠다는 사람이. 고생이 되더라도 힘내야지!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테니 열심히 한번 해보라구."
순간판단력이 부족한 저였기에 그 당시 저는 그분 말씀이 제대로 접수가 안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 아∼예! 그러죠.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신사는 본당 사목회 간부였는데, 수녀님께서 실직한 교우 한 명의 일자리를 부탁해서 그날 성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형제님이 미사 시간 내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저 역시 가끔 실직자들을 만납니다. 한번은 힘없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찾아온 한 실직자 형제를 만났습니다. 물론 그분의 가슴아픈 사연들을 최대한 조용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다 확실한 도움, 보다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너무도 속이 상했습니다. 실직자 형제들이 힘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만일 제가 실직으로 인해 당장 끼니걱정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형제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고해(苦海)입니다. 비록 오늘 고통스러우시겠지만 희망을 가지십시오. 고통 가운데서도 활짝 웃는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말을 했다면 그분들은 "공자님 말씀하고 있네. 날씨가 더워지니 맛이 갔구먼"하고 빈정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보다 구체성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친교는 말이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뭔가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친교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친교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①이웃들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관상합니다. ②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형제를 내 일부로 생각하기에 그들과 구체적으로 기쁨과 슬픔, 고통을 나누며 우정을 맺습니다. ③이웃들을 내 형제로 받아들이기에 어떤 모습으로든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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