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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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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9-02 조회수1,939 추천수26 반대(0) 신고

9월 2일 연중 제 22주간 월요일-루가 4장 16-30절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한솥밥>

 

입회를 준비하는 한 학생이 저희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었기에 토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일요일 점심때 떠났으니 고작 만 하루를 같이 지낸 짧은 수도원 체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학생의 얼굴에는 처음과는 달리 상당한 "가능성", "결연한 의지" 등이 엿보였습니다. 저 역시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앞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욱 확신을 갖게 한 것은 점심 먹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그 친구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더 있고 싶은데...학교 때문에..."

 

한 젊은이의 마음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그 친구가 지니고 있던 기본적인 바탕이 좋기 때문이겠죠. 딱 하루를 같이 지냈지만 저희는 그 친구가 지닌 몇 가지 수도생활에 적합한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하루 밤을 묵는 경우 꽤 큰 가방을 들고 오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아무 것도 손에 들지 않고 달랑 칫솔만 하나 뒷주머니에 넣어온 모습이라든지, 열의, 순수한 성품, 원만한 성격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희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저희 형제들, 특히 성소담당 신부님이나 수사님의 배려나 친절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섬세하게 모든 순간을 함께 동행해주었습니다. 아마 이 친구는 수사님들이 그런 노력 안에서 희미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어떤 성소자가 수도성소에 관심이 있어서 수도원을 찾았는데, 오든 말든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식사시간에 초대도 하지 않는다면, 청소도 제대로 안된 먼지 낀 골방에 재우면서 "이보게, 하느님 나라는 말이지 이러이러한 걸세. 우리 한번 그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같이 한번 일해볼까?"라고 초대한다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결국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지금, 이 순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백성들 앞에서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이들도 존귀한 대접을 받는 나라, 시대나 부모를 잘못 타고나 억울하게 갇힌 이들이 석방되는 나라, 자기 자신이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죽을 고생을 하는 이들도 질곡에서 헤어나 기쁘게 살아가는 나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하느님 나라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향하는 모든 봉사나 사도직 역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삶을 통해서, 우리 가정, 직장,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조금이라도 체험하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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