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의 향기 (부활 제3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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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5-04 | 조회수1,53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2003년 5월 4일 (일) - 부활 제 3 주일
[오늘의 복음] 루가 24,35-48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복음의 향기]
오늘 부활제3주일의 복음은 지난 부활 팔일축제 내 목요일 미사의 복음과 같은 루가 24,35-48이다. 이는 루가복음이 전하는 예수부활사화(24장)의 내용 중 세 번째 단락에 해당된다. ①단락: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마리아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제자들에게 알리자 제자들은 불신한다. 그러나 베드로만 무덤으로 달려가 이를 확인한다.(1-12절) ②단락: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부활을 체험하고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단에게 이를 보고한다.(13-35절) ③단락: 불신상태에 있는 제자들 앞에 부활예수가 발현한다.(36-49절) 루가복음 24장 마지막에 기록된 예수승천 부분(50-53절)을 뺀다면, 부활에 관한 기록은 49절로 끝난다. 물론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49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복음에 들어 있지 않다.
오늘 복음이 루가가 전하는 마지막 부활기록이라면, 이 복음을 통해서 루가가 심중(心中)에 두고 있는 의도(意圖)가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의도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확고한 믿음이다. 루가복음은 안식일 다음날, 예수님의 부활 당일(當日)에, 즉 일요일이 월요일로 채 넘어가기 전에, 예수부활과 부활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확고한 믿음을 목적으로 부활사화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부활에 대한 믿음은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더 이상 죽은 이들 가운데 있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부활예수에 대한 믿음은 죽음직전 지상에서의 예수와 죽음직후 부활한 예수의 동일성(同一性)에 대한 믿음이다. 불과 하루만에 이 엄청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무리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생각할 거리가 이미 주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① 새벽녘에 여인들이(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마리아) 들이닥쳐 열 한 제자들과 그 동료들에게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고, 시체가 없어졌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여인들은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갈릴래아에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 보라.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 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6-7절) 라는 천사의 말씀도 전해 주었다. 물론 사도들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부질없는 헛소리라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② 베드로는 달랐다. 단숨에 무덤으로 뛰어간 베드로는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돌아와서 다른 동료들에게 "주님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나에게(시몬) 나타나셨다"(34절) 라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 ③ 낮 시간 즈음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예수를 체험하고 난 뒤 바로 귀경(歸京)하여 자신들의 부활체험을 들려준다. 시간은 흘러 늦은 저녁시간에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제자들은 적어도 이런 세 가지 일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35절)
제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36절) 예수께서 우선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신다. 그 동안 잘 있었느냐는 안부(安否)이기도 하겠지만, 이 평화는 복잡한 머릿속의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말씀이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의심을(38절) 버리고 믿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편적인 성서의 지식들을 가지고 복잡해 하지 말고 성서의 모든 기록들을 예수님 자신을 향하여 해석함으로써 실마리를 풀라는 것이다. 루가복음사가는 자신의 특유한 문체와 문체의 세심함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수님의 공생활 기록에서도 하느님 아버지를 자비와 용서와 사랑의 문체로 표현하였듯이 여기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심한 문체로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아직 아버지께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모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거의 반나절을 함께 걸어가시기도 하셨고, 오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의 상처를 만져볼 수 있도록 내어 보여주신다. 뼈와 살이 있으니 유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까지 잡수셨다.
오늘 복음에 대한 성찰(省察)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신학적 지식에 도달한다. ① 예수님의 부활은 영(靈)적으로만 부활이 아니라 영과 육신의 부활이다. ②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분이시다. 즉, 지상예수와 부활예수는 동일한 분이시다. ③ 성서의 모든 기록(이미 기록된 구약성서, 앞으로 기록될 신약성서)을 해석하는 기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④ 예루살렘에서의 구체적인 십자가사건은 세상을 향한 보편적 구원사건이 될 것이다. ⑤ 여기에 증인(證人)인 사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물론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할 것이다.(49절)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부활축제는 성령강림축일까지 계속될 것이지만, 교회는 오늘 부활 제3주일을 끝으로 더 이상 예수부활에 관한 복음을 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복음서가 전해주는 예수님 부활에 관한 다양한 기록들을 만나 보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모순된 기록들 때문에 골치도 아파했고, 때로는 그 안에서 우리들도 불신하던 제자들과 똑같다는 생각도 하였다. 불신하던 제자들이 부활예수를 만나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밟으면서 마치 우리가 그분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라는 것에 대한 정적(靜的)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동적(動的)인 신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동적인 신앙은 부활신앙 안에 가만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에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證人)이 되는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활예수를 체험하기 위한 진정한 엠마오 여행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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